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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한 재벌 미망인이 드라마 같은 러브스토리 를 담은 <내사랑 사베리오>를 출간해 눈길을 끌 고 있다. | ||
김씨는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재혼생활이 힘들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던 전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인사동에 위치한 한 고급 한정식집.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 지도층이 자주 드나들던 명소였다. 이곳에서 그녀는 종업원으로 일했고 대기업 회장은 손님으로 찾아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씨는 전 남편을 ‘할아버지 손님’이라 불렀다고 한다.
33세나 되는 나이 차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도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가게에 들러 그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가는 등 친딸 이상으로 잘해줬다. 회장은 가끔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딸처럼 여겨서 그러겠거니 여기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한 번 두 번 만나다보니 데이트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결국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만난 지 2년 만에 혼인 신고를 했다. 기나긴 세월의 터울을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은 것.
그녀 나이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이때 느꼈던 ‘할아버지’의 푸근함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TV에서나 보고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두 사람은 함께 퍼즐 맞추듯 맞춰나갔다. 그러나 이들이 맺어지기까지 과정은 평탄치 않았다. 뒤늦게 김씨의 존재를 눈치챈 회장의 자녀들이 완강히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 아들은 “결혼하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노골적으로 훼방을 놓기도 했다.
등을 돌렸던 자녀들이 김씨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만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췌장암에 걸린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그러나 남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고, 결국 결혼 11년 만에 김씨의 곁을 떠났다. 유산은 유서에 따라 분배했다. 그러나 김씨가 상당 부분 양보했기 때문에 자녀들과의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에세이집 속에서 재벌 회장 남편을 꼬박꼬박 ‘할아버지’라고 표현했던 김씨. 그녀는 전 남편의 실명에 대해서는 한사코 공개를 꺼려했다. 고인과 장성한 자녀들에게 누를 끼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다만 남편이 한때 30대 그룹에 들었던 대기업의 창업주라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말에 친구와 함께 기업을 일으켰으며, 이 회사는 현재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만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가 숙명적으로 현재의 남편과 만난 것이 ‘할아버지’를 보낸 후 1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카톨릭 결혼상담소를 통해서 그를 소개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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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김춘란씨 의 모습. | ||
그 남자는 자신이 수도원이나 장애인단체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런 까닭에 결혼한 적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씨는 그의 이 같은 소탈함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얼마 안 남겨 놓고 자신이 전과 11범이며, 전 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남편의 모든 과거를 덮어주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이때의 판단이 자신의 인생궤도를 백팔십도로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을 한 뒤부터 남편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할 생각은 않고 돈 쓸 궁리만 했다. 한 벌에 수백만원 하는 고급 옷이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 달 술값으로 수천만원을 탕진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은 남편의 사치벽에 선반서 곶감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살림살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억대 아파트에서 2천5백만원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결국 보증금 5백만원에 25만원짜리 월세로까지 나앉았다. 설상가상으로 돈이 떨어진 남편은 슬슬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상처가 아물 때쯤 되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김씨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모진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면 정신병원 병실인 때도 있었다. 김씨는 결국 경찰에 남편을 신고했고, 남편은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역경 뒤에야 다시 이어지게 된 남편과의 새로운 인연…. 김씨는 드라마같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 온 여인이다. 하지만 최근 만난 그녀의 얼굴에선 험난한 여정의 흔적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대전에서 대리운전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망나니 같던 남편이 출소 후 새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오는 11월이면 남편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책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재벌 미망인에서 전과 11범의 아내로 ‘전락’한 김씨. 그러나 그녀는 “조금 있으면 우리는 작가 부부가 된다”며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