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가족이 서울로 이사오면서 그녀는 서울에서 중·고·대학을 마쳤다. 한때 방송국에서 합창단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차씨는 실제로 상당한 집안의 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의 큰오빠는 현재 서울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며 사촌 중에는 최근까지 국내 중앙일간지 사장을 지낸 사람도 있다.
차씨 부친은 평양 출신으로 일제시대 때 일본에 유학을 갈 정도로 상당한 재력과 학식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학을 전공한 부친은 한때 일본 중앙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남한에서 전화교환기 관련 회사를 설립해 상당한 재력을 모았다. 그러나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차씨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고, 결국 부친은 지난 70년대 초반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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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용화 | ||
그러나 차씨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부간의 갈등도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별거상태로 있다가 2001년 1월 남편과 합의이혼하게 됐다.
김 의원과 관계를 맺었던 2000년 10월 당시 차씨는 유부녀였던 것. 따라서 김 의원은 유부녀와 관계를 맺은 셈이다.
김 의원과 차씨의 강간·화간 논란은 차씨의 자살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하지만 김 의원은 도덕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의원은 차씨를 일부 언론을 통해 ‘스토커’로 표현했으며 취재현장에서 기자에게 차씨를 두고 심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씨의 죽음으로 이제 논란은 부질없는 일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