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대선 국면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황. 민주당의 ‘신당 창당’ 움직임과 ‘반창비노’를 전제로 한 제3 신당 창당 가능성, 여기에 월드컵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한 정몽준 의원의 대권 도전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대선 정국은 갈수록 혼미해지고 있다.
여기에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 재론되면서 12월 대선 결과는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97년 대선을 꼭 넉 달 앞두고 있던 97년 8월의 상황도 2002년 8월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한국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두 후보간 양자 구도로 진행되던 97년 대선 국면은 8월 들어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의혹이 증폭되면서 다자 대결구도로 변환됐다.
97년 당시 이회창 후보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50%에 근접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압승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두 아들의 병역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 후보의 지지율은 20%대로 급락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당시까지 잠룡으로 분류되던 조순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조 시장은 97년 8월13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또한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 이어 차점 낙선했던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의 지지율은 다자 대결구도를 가상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김대중 조순 후보를 모두 능가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결국 이인제 지사는 8월 말이 가까워지면서 신당 창당을 모색하며 대선전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게 된다.
97년 8월 조순 당시 서울시장이 잠재적 대선후보로 지지율이 급상승한 배경으로는 강력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유권자 사이에 ‘참신한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최근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배경으로 월드컵 후광 효과와 더불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참신한 정몽준 의원이 대안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현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다른 특징은 97년 8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한 이후,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당 창당과 독자 출마를 결심했던 이인제 의원이 5년이 지난 2002년 8월, 후보 선출 이후 또다시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97년의 경우, 이인제 의원 자신이 직접 후보로 나서기 위한 신당 창당이었다면, 2002년의 경우 직접 후보로 나서기보다는 ‘반창비노’ 연대를 매개하기 위한 차원으로 역할이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97년 8월과 2002년 8월에 두드러진 공통적인 특징은 여권의 내분 양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시 집권여당 신한국당은 이회창 후보 선출 이후 두 아들의 병역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후보교체’ 요구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맞섰던 이한동 이수성 박찬종 등 당내 중진들을 중심으로 ‘반이(反李)’ 전선이 형성됐다. 이들 중진들은 각종 ‘연구모임’을 조직, 계파 의원들과 지구당위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로 모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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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지난 4월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6·13지방선거와 8·8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당내 ‘반노 진영’으로부터 ‘후보교체’ 요구에 시달리는 상황은 ‘지지율 하락’에 따른 ‘경선 후유증’이라는 점에서 97년 신한국당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97년 이회창 후보가 ‘두 아들의 병역 의혹’이라는 후보 주변 신상의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한 측면이 강하다면, 노무현 후보의 경우 후보 개인 자질의 문제와 함께 선거 패배라는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차이점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97년에 이어 또다시 이회창 후보를 괴롭히고 있는 ‘두 아들의 병역의혹’은 ‘병역의혹’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내용상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97년 8월에는 ‘병역 면제’ 자체에 대한 의혹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병역 면제를 위해 ‘고의 감량이 있었느냐 여부’가 공방의 주제로 떠올랐다. 동시에 병적기록표에 나타난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당시 거론됐던 의혹으로는
▲ 이회창 후보의 차남 병적기록표 가족관계란에 가필 흔적이 있다는 점
▲ 차남 병적기록표에 기록된 이회창 후보 형의 이중국적 논란 등이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재론되고 있는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의혹은 ‘병무비리 가능성’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병역 면제 과정에 금품이 오갔느냐’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선 정국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현직 대통령의 비중이 약화되고 있는 점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97년 8월 당시 신한국당 총재를 겸하고 있던 YS는 이인제 의원 등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인사들을 면담, 단합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대선 국면에 개입했다.
이에 반해 일찌감치 총재직을 버리고 탈당한 DJ는 외견상 민주당 내부 분열 양상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오히려 DJ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 행사 여부보다는 건강문제가 대선 정국에 더 예민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97년 8월의 YS와 2002년 8월의 DJ는 모두 자신들의 자식을 감옥에 보낸 상태에서 임기 종료 6개월을 남겨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