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은 지난 6월 출범한 한나라당 대선기획단의 전략기획팀을 맡아 사실상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 전략을 총지휘하고 있다. 정 의원은 장상 총리지명자 인사청문회로 시끄럽던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 사무실에서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8월중 방북한다는 이른바 ‘도라산 프로젝트’를 폭로, 가뜩이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여름 정치권에 기름을 끼얹었다.
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한 대표가 8월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방북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 대표는 민주당 의원 및 재야인사 몇명과 대동, 방북을 한 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강산에 80여만 달러를 들여 북한의 요구대로 해수욕장을 마련하고 20만달러를 들여 번지점프장도 개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모 대사가 베이징에 있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중이며 10월 중에 김정일 답방을 추진중인데 정상회담 장소는 대한민국 내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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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근 의원 | ||
하지만 정 의원은 정보 출처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각 언론이 정 의원을 접촉, 정보출처와 추가 사실 등을 알아내려 했으나 정 의원은 “지켜보자”고만 했다. 한 측근은 “신북풍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추가 폭로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의원의 발언 소식을 전해들은 한화갑 대표측은 발칵 뒤집혔다. 측근들은 기자들의 확인 질문에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한 대표측은 “기회가 되면 갔으면 하는 생각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해, 정 의원의 말을 사실상 시인했다. 한 측근은 “지난해 북한에서 열리는 자동차 대회때 가려했다”면서 “당시에는 국회의원 신분이었으나 현재는 당 대표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의원의 주장을 ‘북풍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극비리에 추진하던 한 대표 방북이 정 의원의 폭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만은 분명했다. 방북을 하더라도 당초 기대했던 신선도나 전격성 등에서 그 파급효과가 반감될 것이 뻔했다.
민주당은 허를 찔렸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은 “정 의원은 안기부 차장으로 공작을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답게 근거불명의 발설로 모종의 공작을 하고 있다”며 역 공작설로 위기탈출을 시도했다. 또 정 의원이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법적대응 방침도 마련했다.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뗀다고 선언한 만큼 신북풍설 공방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다. 박선숙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정 의원의 도라산 프로젝트를 내세워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손을 떼라”고 압박한 데 대해 “남북관계는 국정의 주요 업무”라고 점잖게 반박했다. 박 대변인은 또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은근히 한나라당과 정 의원을 겨냥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한나라당의 주장은 과거 북풍조작으로 선거를 좌지우지하던 기억을 토대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즉각 신북풍 정국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은 다음날부터 “현 정권과 민주당이 남북문제를 대선에 이용하려 한다”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 의원이 한 대표의 방북설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한 대표의 반응이 나오면 곧바로 신북풍 음모설로 공격한다는 내부전략이 이미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전략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한 대표 방북의 전모를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을 대선에 이용, 정권연장을 획책하려는 무서운 음모”라고 주장했다. 남 대변인은 또 “어떤 자격으로, 무슨 목적으로 가려는지 분명히 밝혀야 하며 DJ의 지침하에 퍼주기를 통한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려는 정권차원의 비밀 프로젝트가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한 대표 방북설을 폭로한 것은 이른바 ‘기획 폭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최근 국정원 내부와 해외파트, 특히 대북파트 쪽 정보원들로부터 한 대표 방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이 폭로를 통해 한 대표의 방북을 사전에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깜짝쇼’ 효과를 반감시키려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전략팀의 관계자도 “정 의원이 김정일 답방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사전에 차단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정 의원은 조만간 추가폭로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내답방과 관련된 시나리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도라산 프로젝트의 좀 더 구체적인 내용, 한 대표 방북을 위한 국정원과 통일원 그리고 청와대의 막후 지원 등도 폭로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이 국정원 내부로부터 극비리에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는 설도 들린다. 국정원이 이를 이용해 역정보를 흘려 역습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정 의원과 국정원의 정보전이 더욱 볼 만할 것 같다. 이제 대선정국은 완전히 북풍정국에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지금 ‘정형근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