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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1기념관에 있는 심씨의 기록. | ||
1930년대 대련 헌병대에서 근무했던 미오 유타카씨는 체포된 심득룡씨 등을 취조하고 이들을 직접 731부대로 이송한 인물.
유타카씨는 “심득룡은 조선족이었으며 같이 잡힌 왕요선은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50세 가량의 사람이었고 이충선은 정보를 수집해 심득룡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고 말했다.유타카씨는 또 “(이들을 상대로) 두 달 동안 고문을 했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뒤로는 회유 공작을 펴기로 하고 좋은 음식을 갖다 주기도 했는데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유타카씨에 따르면 관동군 731부대는 1938년과 194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군 각급 부대에 공문을 보냈는데 이 공문은 생체 실험 대상자를 보내달라는 일종의 통지서였다. 공문에 따르면 731부대가 생체 실험 대상자로 꼽은 사람은 1순위가 소련의 스파이, 2순위가 항일 투쟁자, 3순위가 (고문을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련 헌병대에게 심득룡씨는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적임자’였던 셈이다.
당시 심씨 등 4명을 마루타로 보내고 난 대련 헌병대는 상급부대인 관동군 부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았다.유타카씨는 “이들을 731부대로 보낸 것은 대련 헌병대(가) 공적(을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731부대로 보낸 뒤) 대장이하 (부대원의) 진급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나도 관동군부대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진급을 했다”고 말했다.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타카씨는 1990년대 중반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타카씨는 이 같은 진술을 주위에 털어놓으며 “약도 먹고 한약으로 지은 안정제도 먹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도 내 정신력이었다. 전쟁중에 내가 한 일은 살아서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유타카씨는 1998년 만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