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에 가면 손목시계형, 자동차 리모컨형, USB형, 만년필형 등 다양한 몰래카메라 도구들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국내 최대의 가전제품 시장인 용산전가상가. 이곳의 명성은 몰카 도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메라를 파는 한 매장에 들어가 “초소형 카메라가 있느냐”고 묻자, 판매상은 “일단 들어와서 상담하시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기자가 방문한 여러 매장 중 몰카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밝힌 곳은 거의 없었다. 누구나 제값만 치르면 고성능의 초소형 카메라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가격도 10만~60만 원대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어떤 물건이 제일 잘 나가느냐”는 물음에 앞서의 판매상은 “USB 저장장치형과 수입차 리모컨 키형이 가장 잘 나간다”며 “화질도 좋고 작동도 간단해 많이들 찾는다”고 밝혔다. USB형은 실제 USB로도 활용할 수 있고, 렌즈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지만 흔히 쓰는 평범한 USB에 비해 크기가 3배가량 크고, 흡사 녹음기처럼 보여 위장하기 어려워 보였다. 한 판매자는 USB형이 잔고장이 잦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리모컨 키형은 매우 정교하고 화질도 훌륭했다. 노트북 컴퓨터에서 직접 확인한 화질은 선명한 HD급에 비디오 카메라와 동급인 30프레임을 자랑했다. 판매자는 “리모컨 키 몰카에 열쇠를 달아 위장하면 아무도 못 알아볼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제품의 차이를 묻자 또 다른 판매자는 “남성은 손목시계형을 선호하고 여성은 휴대용보다는 실내용 몰카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를 묻자 “여성은 스위치 몰카, 탁상시계 몰카를 선호한다. 가정과 관계되는 일 아니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남편의 가정폭력 증거로 이용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손목시계형은 실제 손목시계보다 두께는 두꺼웠으나 숫자판 위에 위치한 렌즈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휴대용 몰카가 약 1시간가량 녹화가 가능한 것에 비해 실내용 몰카는 녹화시간이 최장 12시간 이상으로 길었다.
#렌즈 은폐가 관건
그밖에 취재팀은 복수의 매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몰카 도구를 볼 수 있었다. 앞서 설명한 차키, USB, 손목시계형은 물론, 벽결이시계형, 액자형, 안경형, 만년필형, 라이터형, 지갑형, 단추형, 넥타이형 등 다양한 몰카 도구들이 구매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대부분 HD급의 고화질에 밤 시간대 적외선 촬영까지 가능했다. 주머니가 빈약한 구매자를 위해 국산보다 평균 5만 원가량 저렴한 중국산 제품도 구비해 놓았다.
안경형의 경우 렌즈와 USB포트가 장착돼 있어서인지 다리가 유난히 굵고 도드라져서 40만 원대라는 높은 가격에 비해서는 활용도가 낮아 보였다. 만년필형과 지갑형은 렌즈가 눈에 잘 띄었고 조잡했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혼잡한 공공장소에서라면 충분히 위장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취재팀이 본 몰카 도구 중 가장 진화한 형태는 ‘단추형’ 몰카였다. 단추 뒤에 작은 카메라가 장착된 형태다. 어느 옷에나 부착 가능하고 몸에서 떨어져 있지 않아 적발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가격 역시 60만 원대로 가장 고가였다. 자동차키형은 유명 수입차키 모양을 그대로 본 떠 만든 데다, 렌즈도 작고 까만 돌기 모양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몰카탐지기 무용지물
한편 판매상들은 입을 모아 “경찰, 기자도 사간다. 모 지상파 방송국, 종편 방송국에서도 대량으로 구매해 갔다”고 자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사러 오느냐, 남성이 많이 오지 않느냐”는 질문엔 “잘 모르겠다” “가정주부도 많이 온다” “우리도 어떤 용도로, 왜 사가는지 모른다” 등 대답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가 물건을 보기만 하고 그냥 일어서면 “원래 이런 물건은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사용법까지 자세히 배우고 사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는 판매상도 있었다.
몰카 성범죄로 처벌받는 이들이 해마다 1000명을 훌쩍 넘고, 특히 여름철엔 경사진 계단, 피서지, 공중화장실,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서울지하철경찰대 박형종 수사2대 팀장은 “한 번 시도하면 계속 하게 된다”며 “어떤 피의자는 호기심에 딱 한 번 촬영했다고 말했지만 막상 휴대전화를 열어 보니 1만 5000장이 넘는 여성의 적나라한 사진이 저장돼 있더라. 이것이 현실”이라고 몰카 범죄의 심각성을 전했다.
그렇다면 몰카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몰카 탐지 기술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몰카탐지기 전문업체의 한 관계자는 “불법 감청의 경우 무선 전파신호가 나오기 때문에 탐지가 가능하지만 몰카는 도구에 자체적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전파 등의 신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탐지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몰카는 은폐된 렌즈에 반응하는 장비를 쓴다”며 “빛을 내보내서 렌즈에 반사되는지를 살핀다. 렌즈가 고정돼 있으면 찾기 어렵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동하는 렌즈는 찾기 어렵다. 렌즈는 육안으로 찾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즉 계속해서 이동하는 휴대용 몰카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서정 조남문 변호사는 “몰카 도구를 파는 것에 대해선 처벌 근거가 없다. 단순히 도구를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며 “도촬 및 도청의 해악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미리 법에서 금지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