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철거업체 다원그룹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가 철거용역 폭력의 구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2006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회사 돈 884억 원과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처럼 꾸며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168억 원 등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원그룹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채 채권 회수를 위한 담보 없이 평택지역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한 계열사에 150억 원을 부당지원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도 받고 있다.
다원그룹 측의 범행은 2008년 12월께 회사와 이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이 회장의 측근 정 씨가 전·현직 세무공무원 3명에게 5000여만 원의 뇌물을 건넨 사실이 포착되면서 드러났다. 돈을 받은 세무 공무원들은 지난 5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다원그룹이 돈을 빼돌린 방식은 기상천외하다. 이 회장은 친동생과 처남 등 친·인척들을 그룹 내 자금관련 업무 담당자로 채용했다. 주로 폐기물 업체 등 회사 계열사들끼리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주고받는 방식으로 회계 장부를 빼돌렸다. 경기도 평택가재지구 도시개발 사업에서는 계열사를 통해 군인공제회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2700억 원을 빌린 뒤 이 가운데 134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빼돌린 돈을 개인 빚 청산에 썼다. 부도 위기에 놓였던 청구그룹을 인수한 뒤 회사 돈 372억 원을 빼돌려 골프장 업체 인수에 쓰기도 했다. 또 청구그룹 직원들 명의로 경북 지역 아파트 90채를 허위 분양받아 중도금 명목으로 금융기관에서 168억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장이 다원그룹 계열사인 (주)다원이앤씨와 (주)다원이앤아이, (주)다원환경 등을 동원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이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로비장부’로 의심되는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부에는 이 회장이 지속적으로 관리해온 정치권과 사정기관 고위직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야당 중진 의원인 A 씨와 전직 검찰 고위 간부인 B 씨, 전직 경찰 최고위층 인사 C 씨 등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각종 인·허가와 공사 수주의 편의를 위해 정·관계 로비를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라남도 완도 출신인 이 회장은 지역 향우회에서 활동하며 이 지역 인사들에 대한 로비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신화는 지난 1990년 국내 철거용역업체 ‘1세대’격인 (주)입산에서 분리 독립한 (주)적준(구 적준용역)에서 시작됐다. 적준을 실제 소유하고 있던 정 아무개 회장 형제는 D 씨를 일명 ‘바지사장’으로 앉힌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회사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D 씨는 정 회장 형제와 회사 경영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됐고 정 회장 형제는 적준의 ‘바지사장’을 전격 교체하게 된다.
신임 대표로 임명된 인물은 바로 정 회장 형제의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던 이금열 회장이다. 당시 이 회장은 28세였다. 이 회장은 1998년 적준을 (주)다원건설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다원건설 산하에 여러 계열사를 만들어 폐기물 처리업을 잇달아 수주하며 매출을 크게 늘렸다. 다원건설은 현재 2개 회사로 분리됐고 (주)다원이앤씨와 (주)다원이앤아이로 명칭을 각각 바꿨다.
이 회장은 철거용역 사업을 싹쓸이하면서 많은 재산을 축적했고 ‘바지사장’에서 실제 소유자로 등극하게 된다. 정 회장 형제는 자연스럽게 다원그룹 사업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국내 철거용역사업의 80%를 따내며 사업 기반을 다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김포신곡6지구 도시개발 사업과 평택가재지구 사업 등 재개발·건설업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부도위기에 놓인 (주)청구건설을 1000억여 원에 인수한 뒤 이 회사 자금을 빼돌려 회사를 파산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철거용역으로 현금만 500여억 원을 벌어들였으며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7층 규모의 빌딩에서 음주와 성매매를 모두 할 수 있는 일명 ‘풀살롱’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다원그룹은 철거업, 건설, 골프장 운영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과 계열사 간부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에 봉착하자 필요한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로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회사 돈을 빼돌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승희 언론인
조폭 방식 동원…성추행도 자행
입산-적준-다원그룹으로 이어지는 이 철거회사는 ‘현장’에서 악명이 높았다. 적준 시절 사원은 10여 명 안팎이었지만 필요한 경우 100여 명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조직폭력배’ 방식으로 사업을 벌였다. 또 상시 동원할 수 있는 100여 명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300여 명 수준의 ‘아르바이트 용역직원’을 고용했다.
철거 현장에서는 50명 규모의 선봉대를 우선 투입한 뒤 30여 명의 인력이 몰려다니며 기습조와 실행조 임무를 맡았다. 이들이 철거 현장에서 저지른 범행은 1998년 인권운동 사랑방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12개 단체가 작성한 ‘다원건설 철거범죄 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1년에서 1998년 철거현장 31곳에서 83건의 폭행사건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 2명이 숨지고 49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성추행과 기물파손, 방화 등도 100여 차례 자행됐다. 1995년 봉천6동 철거사업 당시에는 철거대책 위원장을 맡고 있던 여성을 집단 폭행한 후 속옷을 벗기며 성추행한 의혹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1998년 ‘다원건설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응에 나섰으나 이금열 회장 등 다원그룹에 대한 사법처리는 15년이 지나서야 이뤄진 셈이다. 물론 성추행, 폭행, 방화 등의 범행은 이번 다원그룹 수사의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발의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에 대해 단죄한다는 의미에서 다원그룹에 대한 이번 수사는 철거민들에게도 남다른 소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승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