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욱 전 회장의 차남 정도원 회장이 이끄는 삼표그룹을 현재 대기업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인 중에선 아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해야 할 정도다. 현재 삼표를 중심으로 삼표이엔씨, 삼표로지스틱스 등을 주력으로 20여 계열사를 두고 있지만 전부 비상장사여서 제대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삼표그룹의 한 해 매출은 총 1조 5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삼표그룹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까닭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혼맥과 이런저런 구설 때문이다.
삼표의 현재 모습을 과거 재계 30위권의 강원산업과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최근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1966년 삼강운수 설립 당시부터 레미콘 골재 등 건설기초자재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 삼표는 2000년대 들어 유진기업에 레미콘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번 내준 1위 자리를 되찾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유진기업과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러나 최근 동양이 내놓은 레미콘 공장 9곳을 인수하면서 삼표는 레미콘시장 점유율 1위 탈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작업의 일환으로 동양은 전국 43개 레미콘 공장을 매물로 내놓았고 삼표는 이 중 충청권 공장 9곳을 인수했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삼표가 유독 충청권에만 관심이 있고 나머지 지역 레미콘 공장에는 입질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충청지역과 수도권 지역 강화를 동시에 노린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미콘은 그 특성상 공장에서 건설현장까지 1시간 30분 안에 도착해야 쓸 수 있다. 수도권까지 거리를 감안할 때 충청권이라면 메리트가 있다는 것. 또 지방 점유율에서는 유진보다 앞서지만 수도권에서 밀리고 있는 삼표가 충청권을 확보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 점유율을 모두 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전망대로라면 베일에 싸여 있던 삼표의 두각과 부활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삼표그룹 레미콘 공장. 사진출처=삼표그룹 브로슈어
외적으로는 사돈기업인 현대차그룹과 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내적으로는 정 회장의 외아들 정대현 삼표 상무의 후계 승계와 이를 위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정 상무가 실질적 주인으로 알려져 있는 계열사 삼표로지스틱스가 그룹의 일감몰아주기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의 삼표 밀어주기 의혹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현대제철이 슬래그시멘트 원료가 되는 슬래그(철광석 정제 부산물)를 삼표에 몰아주었고 삼표는 이렇게 받은 슬래그 중 상당량을 슬래그시멘트업체에 재분배하면서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것. 슬래그시멘트는 가격이 저렴해 각광받고 있는 건축자재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자재업 특성상 현대제철뿐 아니라 현대건설, 현대엠코 등 현대차 계열 건설사에서 취하는 이득도 상당할 것”이라고 의구심을 내비쳤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먼 사돈도 아니고 직접 사돈 아니냐”며 “업계에서는 대부분 불만을 품고 있지만 불이익이 두려워 현대차그룹에 항의할 입장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정도원 회장의 맏사위로서 정몽구 회장과 정도원 회장은 직접 사돈이다. 정도원 회장 자녀들의 혼인관계는 꽤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 회장 슬하 1남 2녀는 모두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집안과 결혼했다. 장녀 지선 씨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차녀 지윤 씨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아들인 박성빈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와, 외아들 정대현 상무는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장녀 윤희 씨와 결혼했다. 시멘트·레미콘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혼인관계로 미뤄볼 때 삼표의 성장이 더딘 것이 오히려 의문일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룹 내적으로는 정대현 상무의 후계 승계와 관련해 삼표로지스틱스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99년 사이버화물운송업 및 사이버택배운송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한국사이버물류로 출발해 14년 만에 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성장한 삼표로지스틱스는 훗날 정 회장의 외아들 정대현 상무가 후계를 승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표로지스틱스의 감사보고상 ‘회사 주주는 (주)대원(50.0%) 및 그 특수관계자(50.0%)’로 기록돼 있으며 정대현 상무는 ‘최상위지배자’로 명기돼 있다. 삼표로지스틱스 역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삼표의 이러한 부분들은 계열사가 전부 비상장사여서 거래 현황 등에 대한 공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적지 않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에서 삼표가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정도원 회장이 과거 화려한 시절을 되찾기 위해서는 “투명함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