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생 재우 씨와 옛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이 대납하는 형식으로 미납 추징금을 완납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DB
추징금을 완납하기까지 검찰은 세 사람의 중재 작업에 힘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각각에게 일종의 ‘조건’을 내걸며 추징금 납부를 유도한 것이다. 재우 씨 측은 150억 원을 추징금으로 내는 대신 검찰에서 제기한 오로라씨에스 주식 매각 명령이 취하될 예정이다. 애초 검찰은 2011년부터 재우 씨가 보유한 오로라씨에스 주식 33만 주를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매각명령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5월 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주식 매각명령 결정은 재우 씨가 추징금 150억 원을 납부함에 따라 종결이 된다는 것이다. 재우 씨 측은 주식을 압류당하고 경영권이 흔들리는 것보다 차라리 150억 원을 내고 소송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우 씨에게 제기한 비자금에 대한 ‘이자’ 부분을 포기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우 씨에게 비자금 120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한편, 세월이 지나 비자금에 대한 이자까지 생겼다며 이를 모두 합해 추징금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우 씨 측이 추징금 150억 원을 대납함으로써 이 모든 주장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향후 재우 씨에 대한 추가 소송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 측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추징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충분히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과 재우 씨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가운데 신 전 회장과는 이번 합의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신 전 회장 입장에서는 2011년 추심금 채권 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사실상 추징금을 내야할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 전 회장 측은 애초에 80억 원을 ‘도의적인 차원’에서 국가에 기부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에서 이를 “추징금으로 납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설득했다고 한다. 신 전 회장은 결국 이를 승낙하고 노 전 대통령 측과 합의에 들어가게 된다.
대신 검찰은 신 전 회장에게 걸려있던 배임혐의를 마무리해준다는 조건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노 전 대통령 측은 지난 2012년 6월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내 “신 전 회장에게 관리를 부탁하며 비자금 230억 원을 건넸는데 신 전 회장이 임의로 사용하는 등 배임혐의가 있다”며 수사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신 전 회장의 배임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80억 원 추징금 납부’라는 묘수를 꺼낸 셈이다. 검찰은 신 전 회장이 이러한 제안에 동의한 직후 출국금지조치까지 해제시켜주며 배려를 해줬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 전 회장은 검찰 수사 이후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왼쪽부터 노재우 씨,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분쟁이 있긴 하지만 정상적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며 추징금 완납을 조심스레 예측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신 전 회장의 출금 조치를 풀어준 것만 보더라도 자신감이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신 전 회장에게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추징금 납부를 거부한다면 여론의 시각이 좋지 않아 신 전 회장 측이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검찰이 속으로는 애가 타고 있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노태우 추징금’을 하루 빨리 마무리해야 ‘전두환 추징금’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완납 계획이 알려진 직후 전 전 대통령 측에서는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 돌기도 했다.
추징금 합의를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가 급히 귀국한 사실이 전해진 것도 전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압박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8월 22일 홍콩에서 귀국한 재헌 씨는 합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긴 했지만 재우 씨나 신 전 회장 측을 직접 만나지 않고 법률대리인을 통해 모든 합의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법조계 관계자는 “언론에서는 재헌 씨가 직접 나타나 합의를 주도하는 모양새로 비춰졌지만 사실 재헌 씨는 홍콩에서도 법률대리인을 통해 얼마든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이 직접 나섰다는 모습을 통해 검찰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자식들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셈이 됐다”라고 분석했다.
결국 ‘아름다운 합의’로 비쳐졌던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완납의 속살은 검찰의 ‘전두환 수사’를 향한 숨은 중재와 삼자 간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재우 씨 측과 신 전 회장 측은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손을 터는 노 전 대통령 측에게 불만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백억 대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추징금 완납 과정이 깔끔하게 보이지만은 않는 이유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