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의 지나친 눈치 보기로 한국은행이 정부의 금고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요신문 DB
지난 4월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한은에 기준금리를 낮추라는 압박을 공개적으로 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진행하면서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협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한은에 대한 독립성 논란이 빚어지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대신 9조 원이던 총액한도대출을 12조 원으로 늘리는 안을 내놓았다.
총액한도대출이란 한은이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 등에 직접 공급하는 자금이다. 즉 기준금리 동결을 통해 한은의 독립성 논란을 잠재우면서 시중에 돈을 푸는 방식으로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보조를 맞춘 셈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의 압박이 지속되자 한은은 결국 5월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당시 한은 내부에서는 총액한도대출은 총액한도대출대로 늘리고, 기준금리는 기준금리대로 낮췄다며 김 총재가 한은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과 우려가 쏟아졌다. 실제 이러한 우려가 최근 들어 더욱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경기 부양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한은에 ‘돈을 내놓으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정부는 지속된 경기 불황으로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키로 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은이 정책금융공사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면, 정책금융공사는 금리 차이를 통해 마련한 3500억 원을 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하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회사채 정상화를 위해 발행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보증을 서게 된다. 문제는 금리차로 3500억 원을 마련하려면 한은이 공급해야 할 유동성이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돈은 일부 기업, 그것도 신용도 낮은 기업의 회사채 인수에 쓰이게 된다.
한국은행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은이 금융안정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회사채를 사는 것과 특정 기업의 해외 플랜트 수주에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은을 정부의 금고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면서 “최근 복지 공약으로 씀씀이는 늘어나고, 경기 둔화로 세수가 줄어들면서 한은에서 빌리는 돈도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세입과 세출을 맞춰서 건전재정을 유지하지 않고 한은의 발권력에만 기대다가는 향후 어려움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가 부족한 단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은으로부터 빌리는 자금도 증가세다. 지난 3월말 20조 원이었던 정부 대출금은 4월 말 12조 6170억 원, 5월 말 11조 617억 원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6월 말 23조 917억 원까지 급증했다. 정부 대출금은 정부가 세수 부족 등으로 단기집행자금이 부족할 경우 한은에 요청하는 돈이다. 이 자금은 정부가 한은에 1년 안에 되갚아야 한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김 총재가 정부의 압력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며 중앙은행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장에 돈을 풀면 당장은 경기가 원활하게 돌아가겠지만 결국 물가가 올라 서민 생활이 힘들어지고, 정부 부채와 금리 상승으로 재정건전성에 위기가 오게 된다”면서 “한은의 독립성이 강조된 이유는 정부가 눈앞의 목표만을 보고 경제정책을 펼 때, 보다 먼 곳을 보고 경제 청사진을 그릴 기관이 필요한 때문이다. 김중수 총재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동안 한은 독립성에 대해 보다 고민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