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원 부회장이 SK건설에서 물러나며 SK그룹 계열분리설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허 전 사장과 최 부회장의 연이은 사임은 건설사들의 형편을 대변해준다. 특히 SK건설은 중동에 많이 진출해 있는 데다 플랜트 위주여서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플랜트가 호황이라고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암울한 부분이 많다”며 “토목·건축보다 마진이 훨씬 적은 데다 유럽·일본 업체와 수주 경쟁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저가 수주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발주처에서 예상한 금액의 3분의 2 가격으로 수주한 경우도 적지 않아 오히려 발주처에서 놀란다는 것.
건설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2009~2010년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저가 수주 경쟁을 펼쳤다”며 “건설업계에서 수주 영향이 대략 2~3년 후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SK건설 역시 그때 여파가 지금 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SK건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 중엔 SK건설이 조 단위의 적자를 숨기고 있으며 앞으로 적어도 3년간 그룹 지원 없이 독자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SK건설 관계자는 “원가율이 높아졌기 때문이지 저가 수주와는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최태원 회장. 임준선 기자
특히 지난해에는 최창원 부회장이 SK건설·SK가스·SK케미칼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VHC(Virtual Holding Company)를 출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계열분리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SK가스와 SK건설이 서린동 SK그룹 사옥을 떠나 을지로 미래에셋타워로 옮긴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나이로 보나 정통성으로 보나 창업주 일가인 최신원 회장 쪽이 최태원 회장 쪽으로 경영권이 간 것을 아쉬워했을 것”이라면서 “아무래도 작고한 최윤원 회장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작고한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은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장남으로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의 친형이다. 최윤원 회장은 생전에 본인 스스로 경영에 별 뜻이 없음을 내비쳤으며 SK케미칼 경영에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운 채 간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 최 회장은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최태원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는 데 형제들의 의견을 모으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이번 최 부회장의 SK건설 지분 무상 증여로 지난 몇 년간 탄력을 받아오던 SK그룹의 계열분리설에 제동이 걸렸다. 아예 SK그룹 계열분리설이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SK건설·SK가스·SK케미칼’이라는 소그룹 형태가 와해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이 SK가스와 SK케미칼의 부회장직과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지만 SK건설의 지배권을 놓은 이상 더는 세 곳을 함께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SK 본사 전경. 이종현 기자
또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비록 최 부회장이 SK건설 경영에서 손을 떼고 SK건설 지분율을 낮춘다 해도 여전히 SK건설·SK가스·SK케미칼의 소그룹 형태 경영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한 근거는 최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케미칼이 SK건설 지분 25%를 넘게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SK그룹뿐 아니라 계열분리설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SK건설 역시 계열분리설을 일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SK건설 관계자는 “우리는 한 번도 계열분리를 생각해본 적 없다”며 “지주회사인 SK(주)가 압도적인 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주주인 상황에서 계열분리는 언감생심”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창원 부회장이 건설을 빼고 케미칼과 가스만 떼어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케미칼 최대주주는 최창원 부회장이어서 계열분리설이 나올 때마다 걸림돌이 됐던 지분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분리가 가능할지라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건설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라면서 “최 부회장의 사임과 지분 증여에는 건설은 빼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다면 금호석유화학의 예처럼 소규모 계열분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