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과 관련, 지난 21일 동두천 미 2사단 정문 앞에서 한 대학생이 혈서가 쓰여진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 ||
실제로 이번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은 모두 사단장의 ‘참모’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미군의 공정한 재판진행 의지에 의문표를 던지고 있다. 사실 배심원제는 미국 고유의 사법체계이므로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판관할권을 둘러싼 SOFA 협정 개정이 요원한 시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미군의 배심원제에 대한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군 당국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배심원들을 선정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안으로 굽은 팔’이 제대로 평결을 했을지 의문으로 남는다. 과연 미군 사단장은 배심원들을 공정하게 선발했을까.
지난 11월20일 경기도 동두천 미 8군사령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피고인 니노 병장(관제병)에 대한 재판에는 장교 3명과 부사관 4명 등 모두 7명의 배심원이 참석했다. 당초 10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배심원으로 선발됐지만 검찰과 변호사측이 3명에 대해 기피신청을 해 7명이 평결을 맡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열린 워커 병장(운전병)의 재판 역시 비슷했다. 애초 10명의 배심원이 선정됐지만 2명이 기피신청으로 배제되고 장교 4명, 하사관 4명 등 모두 8명의 배심원이 평결에 나섰다.
이들은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되었을까. 배심원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좌우되는 미 심리제도의 특성상 반드시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미 군사재판의 경우 관할 사단장이 배심원들을 선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예하 지휘관들에게 배심원으로 적합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제공받는다. 평소에 사단장은 30~40명 정도의 예비 배심원들의 명단을 작성해 놓고 재판에 대비한다. 만약 재판이 열리게 되면 사단장은 배심원 후보 리스트를 참고로 재판에 나갈 배심원들을 선정하게 된다.
군사법에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경력이 오래되고 지휘관 경험이 있는 장교나 부사관들을 임명한다고 한다. 배심원들은 피고인보다 높은 직급의 군인들이 맡는 게 관례다.
▲ 지난 21일 동두천 미 2사단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들. | ||
이번에도 그와 같은 기준에 맞는 사람만 뽑았다. 예를 들어 피고인과 친구이거나 같은 지역 근무자, 다른 재판에 선 적이 있거나 배심원 경력 등이 있는 사람은 검찰과 변호인단이 기피인물로 지정하기 때문에 배심원에서 배제하고 있다.” 미 2사단 최양도 공보관은 “배심원 중에서 검찰과 변호인측이 객관적인 평결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패널을 미리 배제하기 때문에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단장의 ‘의중’에 따라 배심원의 성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소지를 안고 있다. 사단장은 전적으로 자신의 권한과 책임으로 배심원을 선정하지만 인종 성별 나이 계급 등 일체의 요소를 면밀히 고려해 선발해야 한다. 과연 미 2사단장은 이번 재판에서 최고의 공정성을 가지고 배심원들을 선정했을까.
이에 대해 먼저 미국 와이오밍주의 군사재판 전문가 에드워즈 변호사의 ‘조언’을 들어보자. “사단장은 편견이 없고 공정한 평결을 내릴 부대원들을 선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사단장이 항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배심원들을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단장은 그의 입맛에 맞는 평결을 내릴 배심원들을 배심원단 속에 섞어넣기도 한다. 이것이 소위 ‘사령관의 영향’(command influence)으로 불리는 것이다.” 미국 법조계에서 ‘사령관의 영향’이란 용어로 굳어질 정도로 미국 군사재판의 배심원제도는 그 공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서 25년 동안 군사재판 전문가로 일해온 변호사 클리마스키씨도 이에 대해 “미국 군사재판의 경우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many times)’에 사령관이 재판결과에 영향력(influence)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 재판의 경우 ‘사령관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번 사건의 재판 결과를 놓고 다음과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먼저 이번 재판의 배심원들은 모두 사단장의 ‘참모’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배심원들의 계급은 장교일 경우 중령급 이상, 부사관일 경우 주임원사급에 해당하는 고급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오랜 군 생활을 통해 지휘관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군 생리에도 정통한 베테랑들이다. 이런 ‘충성 코드’가 깊이 입력돼 있는 이들 배심원들이 부대의 명예나 사단장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섣불리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미 2사단 최양도 공보관은 이런 세간의 의구심에 대해 “배심원들은 대부분 고급간부들이라 사단장과도 잘 아는 사이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이번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추측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다. 오히려 고급간부들의 경우 일반 사병에 대해 더 냉정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워커 병장의 변호를 맡았던 가이 워맥 변호사도 “평결 결과가 4시간 30분 만에 나온 걸로 보아서 배심원들 간에 열띤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재판은 공정했다고 본다. 나도 22년 동안 군사재판에서 변호를 해왔지만 패널의 공정성 문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사령관의 영향’ 여부를 떠나 이들 배심원들의 근무지역을 놓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피고인들과 유사한 지역 근무자로 드러나 배심원이 선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 배심원들은 대부분 니노, 워커 병장이 근무했던 지역과 유사한 경기북부지역에서 근무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 2사단측은 경기 북부라 해도 워낙 넓은 지역이라 피고인과 배심원들이 ‘지역연고’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 2사단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카투사는 이에 대해 “예전에 사단에서 재판이 열리면 배심원들이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대구나 부산 같은 먼 지역에서 온 다른 부대원들이었다. 그래서 배심원 선정 때 지역도 세심하게 고려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미 군사재판에서 사단장은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한 모든 절차를 최선을 다해 수행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가 이번 재판의 배심원 선정에 한점 의혹이 없었는지는 앞으로 언론이 검증해야 할 숙제로 남을 것 같다. 그것이 억울하게 죽은 두 여중생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