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강골검사’로 유명한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은 지난해 지검장직에서 물러난 후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어느 날 사무소의 한 경리과 직원이 “이 사건 어떠냐”며 남 전 지검장에게 사건을 소개해줬던 것. 사건을 받아든 남 전 지검장은 고마운 마음이 들어 해당 직원에게 작게나마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검장 시절 청렴하기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고심 끝에 파격적인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남 전 지검장이 경리과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달한 성의 표시는 3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이것을 받아든 직원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이 직원은 낯빛이 어두워진 얼굴로 “지검장님, 지금 장난하세요?”라며 차갑게 쏘아붙이고 자리를 떴다. 알고 보니 ‘사건을 소개해준 대가로 착수금 중 30%를 소개인(브로커)에게 떼어줘야 한다’는 법조계의 은밀한 풍토를 남 전 지검장이 인지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안타깝게도 남 전 지검장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법조계에선 ‘꼬찌’라는 은어로 불리는 커미션의 힘은 예상 밖으로 막강했다. 충격의 ‘지검장님, 장난 하세요’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브로커가 남 전 지검장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법률적으로 까다롭지만 높은 수임료를 기대할 수 있는 사건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남 전 지검장은 ‘한번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브로커는 사무실 밖에 세워뒀던 사건 당사자를 데려와 남 전 지검장과 변호사 선임 계약을 즉석으로 맺게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꼬찌’가 문제가 될 줄 남 전 지검장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예상 수임료의 30%를 현금으로 달라”는 브로커의 요청에 남 전 지검장이 “그건 불법”이라며 일축하자 지검장 시절엔 상상도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이에 이 브로커가 남 전지검장이 보는 앞에서 방금 계약을 마친 따끈따끈한 계약서를 보란 듯이 반으로 찢어버렸다는 것.
당시 장면을 목격했다는 남 전 지검장 측 관계자는 “법조계에서 불법 ‘꼬찌’로 장사를 하는 브로커들 주제에 얼마나 당당하게 나오던지, 보는 나도 황당했다”며 “전관 출신 유명 변호사에게도 뻔뻔하게 나오는데, 그동안 일반 변호사들은 브로커들에게 얼마나 잡혀 살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커미션 공화국이다. 한화 등 유명 대기업을 벌벌 떨게 했던 실력파 지검장 출신도 ‘꼬찌’(커미션)를 법조 브로커에게 넘기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브로커들의 해묵은 문제가 고쳐져야 법조계가 살아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