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분이 ‘여대생 청부 살해사건’을 토대로 소설을 쓴 청부살인자의 변호인을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
<일요신문>이 입수한 해당 사건의 고소장에 따르면 소장은 지난 7월 19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됐으며 원고는 영남제분과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알려진 윤길자 씨의 사위 김현철 씨(전직 판사)다. 원고 측의 변호는 법무법인 우송이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고는 당시 윤길자 씨의 사주를 받고 하지혜 씨를 죽인 공범 윤남신 씨의 변호인 엄상익 변호사다.
원고 측은 소장을 통해 “피고는 형사사건 종료 후 그 재판과정을 소설형식으로 쓴 글을 ‘판사여자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블로그에 게재했다”며 “범죄행위와 관련이 없는 원고들을 ‘판사사위’ ‘회장 측’ ‘회장부인’ 등의 용어를 사용해 형사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하였고 원고들 및 영남제분 대표이사에 관한 허위사실이 포함된 내용을 기재해 원고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송사 이유를 밝히며 엄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청구금액 5000만 원)했다.
소장에 따르면 원고 측은 이 글에 대해 기존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원고들을 아는 사람이 다수였고 피고가 작품에 원고들을 명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고들은 특정돼 있다”며 “실제 한 방송사가 해당 작품을 보고 방송을 제작했고 일반인들은 원고들을 특정해 글을 올리거나 영남제분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원고들의 사회적 명성, 신용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엄 변호사는 지난 9월 3일과 5일, 원고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청구원인에 대한 사전 답변서’와 ‘준비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
피고 엄상익 변호사는 우선 원고 측이 주장한 ‘소설과 사건 파장의 인과관계’에 대해 “영남제분은 방송사의 보도 때문에 언론과 네티즌의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피고는 그 보도나 형집행정지에 대해서는 피고가 창작한 소설에서 언급한 바 없으며 (본인은) 해당 방송사와 인터뷰도 한 바 없다”며 “영남제분 역시 호소문에서 사모님의 형집행정지를 보도한 방송 때문에 주가가 하락됐다고 언급했다. 피고의 소설과 영남제분의 피해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원고 측이 피고의 소설이 원고들을 특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해당 소설은 당시 언론을 통해 얻은 자료와 법정에서 목격한 사실, 죽은 여대생 아버지와의 인터뷰, 청부살인범 본인과 가족들을 만나본 자료를 토대로 소설을 썼다”면서 “집필 과정에서 제분회사를 화장품재벌로 바꾸었고 판사 사위는 본인 실명이 아닌 실존하는 다른 법조인의 실명을 사용했다. 작가는 소설에 현실감을 더하거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회에서 알려진 사건을 모델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원고 측의 청구 원인에 대한 답변서.
엄상익 변호사는 “불법과 비리에 저항하는 게 작가의 의무다. 피고는 소설가로서 또 변호사로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진실을 발표해 왔다”며 “인격권이라는 한계 때문에 여대생 살해사건을 모델로 한 소설 속에서 파헤치지 못한 사실이 많다. 앞으로 이 사건 심리과정을 통해 소설의 배경이 된 진실투쟁을 피고들과 정면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첫 번째 공판일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원고 측의 소장과 이에 대한 피고 측의 답변서만 보더라도 이번 법정공방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으로 쉽게 예측된다. 원고와 피고 모두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 또한 윤길자 씨의 형집행정지와 관련한 방송사의 보도 이후 한동안 파장이 일자 저자세를 취했던 영남제분과 사건 관계자들이 돌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여론의 추이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영남제분 측은 엄상익 변호사를 고소한 것 외에도 비슷한 기간 부산 남부경찰서에 악성 댓글을 작성한 네티즌 140여 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황. 이 때문에 이번 송사는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