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7@ilyo.co.kr
본입찰에는 아워홈, 신세계푸드, 빙그레, 푸드엠파이어(싱가포르 식품회사), 한앤컴퍼니 5곳이 최종적으로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공개 경쟁 입찰로 진행된 딜인 만큼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선정되는 방식이었다. 본입찰이 마감되고 4일 후인 지난 9월 2일 한앤컴퍼니가 최종 승자라는 결과가 발표되자 인수전에 참여한 유통·식품업체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웅진식품 인수전의 유력 후보는 신세계푸드와 빙그레가 거론돼 왔다. 한앤컴퍼니는 투자금을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PEF의 특성상 시너지 등을 고려해 인수를 벼르던 타 후보들에 비해 높은 가격을 써내기 어렵다는 예상이 많았다. 한앤컴퍼니가 제시한 가격은 1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지난 2월 법원에서 인가된 회생계획안 상의 웅진식품 매각가치 495억 원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지난해 2158억 원의 매출과 4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음료업계 3위 업체인 웅진식품을 품에 안으려는 대기업들이 매각 작업 초기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입찰 진행 과정에서의 몸값 상승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이처럼 한앤컴퍼니의 뜻밖 승리로 마무리된 웅진식품 인수전이 결과 발표 한 달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다시 이슈가 된 것은 삼성증권이 본 입찰 마감 후 푸드엠파이어와 따로 접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부터다. 삼성증권은 본 입찰 하루 뒤인 지난 8월 30일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푸드엠파이어 측에 전화를 해 “기회를 한 번 더 줄 테니 인수가격을 다시 써내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푸드엠파이어 측은 인수가격을 올리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 입찰가 조정을 포기했다. 푸드엠파이어는 예비입찰 후 한 달여간 실시된 웅진식품 정밀 실사 결과 인수 후 예상 시너지가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본 입찰 때 입찰가를 오히려 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푸드엠파이어가 본입찰에서 제시한 가격이 예비입찰 때의 가격과 차이가 많이 나서 전화해 이에 대한 문의를 한 것뿐”이라며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투자은행(IB)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증권이 본 입찰 때 가장 높은 가격을 제출한 신세계푸드를 빼고 각각 두세 번째의 금액을 써 낸 한앤컴퍼니와 푸드엠파이어를 대상으로 입찰가 흥정에 나섰다는 소문까지 나오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증권이 신세계푸드를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기 위해 입찰가 재조정에 들어갔으며, 이 때문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 발표도 예정보다 늦춰져 본 입찰 후 4일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측은 이 모든 것이 “오해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한앤컴퍼니가 본입찰에서 애초부터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해 선정된 것으로 입찰가 재조정에 나섰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과거 신세계-이마트 분할 건을 맡아 진행한 적도 있으며 이번 웅진식품 매각에서 삼성과 신세계의 관계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신세계푸드 측은 “공식적으로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재계에서는 이번 웅진식품 인수전과 관련한 루머들이 삼성과 신세계의 불편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 놓고 있다. 유통업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신세계그룹은 지난 1999년 삼성이 영국 테스코와 합자해 삼성테스코(현 홈플러스)를 설립하면서 영역 침범에 나서자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2011년부터는 이마트가 다른 제조사들과 협력해 ‘반값 TV’를 적극 내 놓으며 삼성전자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반값 TV 논란이 시작된 2011년 삼성 주도의 이병철 회장 추모식 행사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초청받지 못하자 갈등이 깊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 바 있다.
지난해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소송 제기로 시작된 삼성가 유산상속 소송에서도 삼성가 형제들 중 이명희 회장만 사실상 어떤 입장도 내 놓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집안에서 막내인 이명희 회장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다른 형제들과 달리 큰오빠인 이맹희 전 회장을 집안의 어른으로 생각해 유독 잘 챙겼다”며 “지난해 소송전에서도 표면상 중립을 지켰지만 사실상 이맹희 전 회장과의 관계가 고려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소송전을 계기로 삼성과 CJ의 관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 삼성과 신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편한 관계가 형성돼 왔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다른 범삼성가와는 달리 자체적으로 건설사(신세계건설)는 물론 IT서비스 업체(신세계I&C)도 있는 등 사업상 삼성에 굳이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며 “이런 상태에서 상호간 영역침범이 생기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웅진식품 매각건과 관련한 루머도 이런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듯하다”고 관측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