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에서 출발한 동양은 오늘날 금융으로 더 유명하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사생활을 하던 현재현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 이양구 회장의 큰사위다. 현 회장은 1977년 법복을 벗고 동양시멘트(현 동양메이저·동양)에 입사한다. 경영수업을 위해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하면서 금융과 인연을 맺는다. 1983년 동양시멘트 사장에 취임한 그는 이듬해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했고, 1986년 그룹회장에 취임한다. 이후 금융 계열사를 늘려 1990년대 현 회장이 이끄는 동양그룹은 시멘트·건설과 금융의 양대 축을 가진 중견재벌로 성장한다. 재계 관계자의 회고다.
“노태우 정부 때까지 시멘트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쌍용양회를 주축으로 동양메이저, 한라시멘트, 성신양회, 한일시멘트, 아세아시멘트, 이렇게 주요 6개사는 신도시 건설 붐과 함께 연 25%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누리며 ‘황금의 제국’을 건설했다. 쌍용그룹은 재계 7위까지 도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함께 시멘트에서 번 돈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쌍용, 동양, 한라, 성신 등이 빚더미에 짓눌렸다. 경기 급랭으로 시멘트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금융경색으로 이자율은 치솟았다.”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허덕이고 있다. 일부 계열사들이 구조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구윤성 인턴기자
현금을 잘 버는 오리온그룹마저 2001년 계열분리 되면서 그나마 회사 재산을 팔아 겨우 이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룹의 모태인 시멘트부문까지 외부에 맡기고 돈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래도 동양생명과 동양증권 등 알토란 같은 금융계열사들이 돈을 벌어 준 덕분에 현 회장의 리더십이 유지될 수 있었다.
국내외 경기가 살아나면서 2005년에는 부채가 8910억 원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숨통이 트이자 현 회장은 또다시 모험을 건다. 한일합섬 인수였다. 2006년 이뤄진 인수 작업에 동양은 1000억 원 넘는 자본을 투입했다. 한일합섬이 보유한 현금과 자산 등으로 인수대금은 물론 그룹 빚까지 줄이겠다는 복안에서다. 덕분에 2007년 말 동양시멘트는 자기자본은 3321억 원, 부채는 7350억 원으로 부채비율 200% 하향을 목전에 두게 됐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건설경기 급랭으로 2009년 부채는 다시 1조 2175억 원으로 불어나고, 자기자본은 2429억 원으로 줄어 부채비율은 다시 500%로 치솟았다.
여기에 2008년 5월 이뤄진 골든오일 투자로 치명타를 맞는다. 골든오일의 유전개발 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3000억 원 가까운 현금을 까먹게 되고, 이는 결국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던 동양생명 매각으로 이어졌다. 동양생명과 동양증권이라는 ‘금융 쌍발 엔진’으로 날다가, 한쪽 엔진이 떨어졌으니 돈줄이 마르는 게 당연했다.
이후 동양은 단기채권과 기업어음(CP)을 발행하고, 동양증권을 통해 일반투자자에게 팔았다. 그런데 동양증권마저 최근 증시 부진으로 흑자폭이 줄어들면서 그룹 전반의 유동성이 고갈됐고, 결국 이번 위기가 불거졌다.
현재현 회장.
그리고 2005년 5월 마침내 현 회장의 동양그룹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골프장 운영을 위해 1989년 설립한 현 회장 개인회사 동양레저가 동양메이저 유상증자에 참여해 19.56%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로써 현 회장의 동양그룹에 대한 지배력도 40%에 육박하게 됐다. 동양레저는 창립 이래 줄곧 적자인 데다, 자본잠식 상태인 부실기업이지만 지주사로 부각할 수 있었던 데는 현 회장이 키운 금융 계열사의 지원이 핵심이었다.
동양레저는 2004년 3월 보유한 골프장을 동양생명에 1533억 원에 매각했다. 그런데 보험업법은 자기자본이 아닌 고객자산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의 제지를 받지 않았다. 동양레저는 이 돈으로 알짜 계열사인 동양증권의 지분도 매입해 현재 2대주주다. 동양증권의 1대 주주도 (주)동양(옛 동양메이저)의 자회사인 동양인터내셔널이다. 동양증권도 현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1대 주주를 향한 현 회장의 집념이 강했다는 사실은 자매그룹인 오리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양그룹과 달리 오리온 최대주주는 여전히 고 이양구 창업주의 둘째딸인 이화경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의 남편 담철곤 회장은 2대주주에 머물러 있다. 특히 당찬 성격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은 2001년부터 10년간 사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현 회장이 본인 중심의 지배구조를 완성했지만 이는 다시 동양그룹과 그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 회장 지분 거의 전부가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돼 있다. 그룹 지배를 위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진 빚”이라며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빚까지 내가며 얻은 현 회장의 경영권도, 30년여 쌓아온 황금의 제국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