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3호에선 극적인 정치드라마 민주당 광주경선을 정확히 예측했다.(왼쪽),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오른 정몽준 의원 을 철저검증한 537호. | ||
그토록 숨가빴던 2002년, <일요신문>은 항상 역사의 현장 속에서 독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창간 10주년을 맞았던 <일요신문>의 올 한 해 발자취를 뒤돌아본다.
뭐니뭐니 해도 올해의 가장 큰 화두는 대통령선거였다. 창간 후 10년 동안 항상 정치적 풍향계가 돼왔던 <일요신문>은 이 엄청난 권력변환기에 역시나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고비 때마다 민심을 읽어냈고 끊임없는 특종행진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그 시작은 ‘노풍’의 대예측. 지난 3월, 국민들은 ‘주말 정치드라마’ 민주당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에 푹 빠져있었다.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와 대안론의 노무현 후보. 고비는 광주경선이었다. <일요신문>은 광주경선 일주일 전 ‘파란의 경선정국 대예측…노무현 바람 광주선 태풍(513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예측은 적중했다.
사실상 오늘날의 노무현 대통령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주당 경선의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이른바 ‘홍3게이트’는 날이 갈수록 그 크기가 불어났다. <일요신문>은 김홍업씨의 최측근 김성환씨 회사에 투자한 기업들을 찾아내는 특종(515호)을 발굴해내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데 한몫했다. <일요신문>은 곧이어 DJ 특보 출신 최규선씨의 비리를 최초로 폭로(517호), ‘최규선 게이트’를 촉발시켰다.
5월과 6월은 월드컵 열풍이 한반도를 덮친 시기. <일요신문> 역시 심층적인 와이드 특집으로 붉은 열풍에 합류했다. 대표팀이 16강의 고비를 넘어설 즈음 <일요신문> ‘히딩크호가 대권 바꾼다(524호)’는 기사를 통해 정몽준 의원의 급부상과 월드컵 세대의 ‘정치화’ 등 월드컵의 정치적 효과를 예견했다.
▲ 539호 ‘병풍’ 관련 특종으로 기협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 했다. (왼쪽), 신의주특구 양빈 장관의 ''두 얼굴’을 542 호에서 과감하게 폭로했다. | ||
<일요신문>의 ‘병풍’ 추적의 백미는 ‘바람’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은 대특종 ‘김대업 테이프 손댄 흔적 많다(539호)’. 당시 병풍은 김대업씨의 입에 좌우됐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그의 입만 따라다닐 때 <일요신문>은 한 달간의 추적 끝에 테이프의 편집 흔적을 최초로 확인한 것이었다. 전 언론이 <일요신문>의 기사를 인용보도했고 얼마 뒤 이는 검찰의 발표로 재확인됐다.
이렇듯 병풍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을 때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 열풍을 타고 급부상했다. <일요신문>은 유력한 대선후보로 올라선 정 의원의 자질검증에 나섰다. 그리고 8월 말 ‘정몽준 의원 대학 1년 유급의 비밀…커닝하다 정학당했다(537호)’는 특종을 낚아냈다. 이후 ‘정몽준과 축구기금(538호)’ 등 정 의원에 대한 자질검증을 계속 진행해 국민들의 선택에 큰 도움을 줬다.
남한에서는 대선전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생존을 건 개방정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절정은 신의주특구. 그러나 문제는 특구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에게 있었다. 국내외 모든 언론이 양빈의 ‘겉핥기’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일요신문>은 ‘양빈의 두얼굴(542호)’을 통해 그가 문제가 적지 않은 로비스트임을 밝혀냈다. 급류를 타던 북한의 개방정책은 이 때문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 548호 정치부 기자 설문조사 결과 ‘대통령감 1위’ 는 노무현이었다. | ||
바로 다음주에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관련 폭로가 터져나왔다. <일요신문>은 이를 다각도로 분석, ‘이익치가 노무현 살린다(546호)’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후 ‘정풍’은 급속히 잦아들었고 노무현 후보는 꺼진 정풍을 딛고 단일후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일요신문>은 가장 정치감각이 뛰어나다는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기사가 ‘정치부 기자 1백 명에게 물었다…대통령감 노무현 1위(548호)’였다. 이는 결국 선거결과로 나타났지만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 먼저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한편 ‘죽기살기식 대선전’을 보도하면서 <일요신문>은 많은 오해를 받아야 했다. 민감한 기사가 실릴 때마다 ‘도대체 누구편이냐’는 의혹을 받은 것. 대선전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각 후보진영은 <일요신문>이 어느 편인지 분석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결론적으로 각 후보진영은 <일요신문>을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분석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일요신문>이 ‘독자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봤듯 <일요신문>은 민심의 향배를 가감없이 보도했고, 어느 후보가 도움을 받을지에 상관없이 진실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기사를 실었다.
이제 2003년 새해와 함께 노무현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권력의 변환과 상관없이 창간 후 10년간 지켜온 <일요신문>의 ‘독자중심주의’는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