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하지만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폐기하려고 했다면 국정원에는 왜 한 부를 남겨뒀겠느냐”고 항변한다.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 한 부가 노 전 대통령이 오히려 후임 대통령을 배려한 증거라는 것이다. 한 친노 측 인사는 “노 전 대통령도 후임 대통령과 국정원이 후일 정상회담에 대비해 참고할 수 있도록 국정원에 남겨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선의의 의도’ 때문에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은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대화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면 15년 동안 후임 대통령조차 열람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 경우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은 똑같은 문서인데도 후임 대통령이 볼 수 있어 두 문서의 법적 지위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고려해 국정원에만 보관토록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친노계 내에서는 이런 해석이 상당히 퍼져 있다.
하지만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던 노 전 대통령이 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결정을 비서진과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참여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인 문재인 의원은 줄곧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만약 문 의원이 이관이 안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 자체로 참여정부 시스템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기록물 이관이라는 국가 중대사를 비서실장과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결정했다는 것이 된다. 만약 문 의원이 이관이 안 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이관되었다고 주장했다면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문 의원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일단 야권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 관리의 절차적 문제까지 관여했을지 의문”이라며 실무진의 착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대화록 같은 중요 기록물이 실수로 누락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향후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가 있겠지만, 죽은 전직 대통령의 진술이 없는 한 이번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