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발기부전, 조루 증세를 보이는 배우자를 이끌고 비뇨기과를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구윤성 인턴기자
B 씨를 결혼할 남자라고 소개한 A 씨는 “이 남자를 사랑해 결혼을 결심하긴 했는데, 이 남자는 그동안 내가 잠자리를 가져본 남자들 중 성기능이 가장 부실하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진찰을 받아보게 하려고 병원에 데리고 와봤다”고 밝혔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A 씨와는 달리 B 씨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결국 이 원장은 B 씨에게 조루 치료제를 처방해줬다.
이 원장은 “이들뿐만이 아니라 요즘 부인이나 애인의 손에 이끌려 비뇨기과를 찾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비뇨기과를 방문해보니 병원 대기실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배우자로 보이는 남성들과 함께 병원에 왔다.
앞서 결혼을 앞둔 연인의 사례와 다르게 이미 결혼한 부부가 함께 비뇨기과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C 씨 역시 부인이 먼저 C 씨에게 비뇨기과에 가 조루 증세와 관련해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C 씨는 처음에는 치료 받는 것을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성관계를 빼어나게 잘하지는 못해도 부인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 역시 강하게 나왔다. 부인은 “성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아 더 이상 참고 같이 살 수는 없다”며 “치료해보고도 안되면 갈라서자”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이혼 이야기에 깜짝 놀란 C 씨는 결국 부인과 함께 비뇨기과를 찾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심지어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을 보낸 신부가 신랑의 잠자리 능력에 실망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비뇨기과를 찾는 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배우자를 이끌고 비뇨기과를 찾는 여성들은 40대보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 원장은 “40~50대 여성들은 결혼 전 연애 경험이나 성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의 성관계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이제 와서 굳이 남편의 성기능을 고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느냐 생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제 막 결혼을 앞두거나, 결혼 초기의 젊은 20~30대 여성들은 결혼 배우자말고도 다른 남성들과 성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요즘은 인터넷이나 책 등을 통해 접하는 성생활 정보가 많아 무의식적으로 남편과 다른 남성들을 비교하게 된다. 이 원장은 “요즘 여성들은 자기표현이 확실해 성생활이 불만족스러우면 바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치료 방안을 고심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비뇨기과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병원 대기실에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배우자는 물론 다른 남성 환자들까지도 여성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발기부전으로 비뇨기과를 찾는 신 아무개 씨는 “비뇨기과에서 여성들을 만나면 너무나도 어색하고 껄끄럽다. 괜히 여성들이 나를 보고 성병에 걸려서 온 것으로 생각할까봐 죄지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심지어 아는 사람도 아닌데 내 주변에 내가 비뇨기과 다닌다는 사실이 소문이라도 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병원 대기실에 여자가 있으면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인이 비뇨기과를 함께 찾는 것이 꼭 부끄럽고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연인 사이의 남성과 여성이 같이 병원을 찾으면 약물 치료뿐 아니라 함께 상담을 통해 발기부전이나 조루를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이 원장은 “배우자 여성들과 함께 병원을 찾는 30대 초중반의 남성들은 아직 젊고 성기능이 왕성한 시기이기 때문에 발기부전 증세가 신체적인 문제보다는 심리적 요인이 큰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배우자와 함께 찾아오면 꼭 약을 처방하지 않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 상담을 통해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예전 환자 중에 부인과 함께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 남성은 ‘다른 여자들과는 성관계에 문제가 없는데, 부인과 하려고 하면 발기가 되지 않는다’며 이혼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약 처방보다는 심리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남편과 부인을 한 자리에 모셔두고 상담을 2차례 진행했다. 다른 얘기는 한 것이 없었다. 다만 남편에게 부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려줬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남편이 부인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결국 약을 먹지 않고도 심리 상담만으로도 부부는 다시 원만한 성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원장은 “부인이 치료를 위해 남편을 비뇨기과에 데리고 오는 것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부간에 성관계에 대한 고민을 숨기지 말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성병환자만 찾는 곳 아니네…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여성전용 비뇨기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진제공=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과거에는 여성들이 방광염이나 요실금으로 고생하면 비뇨기과보다는 산부인과나 내과를 먼저 찾았다. 산부인과가 비뇨기과보다 여성들에게 훨씬 친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은 산부인과보다는 비뇨기과가 전문이라고 한다.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소변과 관련된 콩팥, 방광, 요도 등의 질환은 비뇨기과 소관이다. 산부인과와는 다루는 신체기관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원장은 “최근에는 인터넷 등에서 정보를 많이 접한 여성들이 치료를 위해 비뇨기과를 찾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방광염 때문에 비뇨기과를 찾았다는 이 아무개 씨도 처음에는 내과를 먼저 찾았다고 했다. 이 씨는 “동네 내과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낫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의사도 비뇨기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처음에는 비뇨기과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겼다. 비뇨기과는 성병에 걸린 남성들이 찾는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방광염은 비뇨기과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맞더라. 바로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덕분에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고 말했다.
비뇨기과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여성전용 비뇨기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아직도 시설이나 인력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최초의 비뇨기과 원장으로 2008년부터 여성 비뇨기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경희 원장은 “비뇨기과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찾아와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병원이나 의사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는 나를 포함해 30여 명 정도다. 환자들의 요구는 늘어나는데, 여성 환자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많지가 않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