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대신 커다란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나선 초등학생이 있다. 담임이 무서워서 학교를 못 가겠다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4학년인 김 아무개 군(11)이다. 지난 8월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김 군은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서울의 심장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종편 JTBC의 뉴스에서는 김 군의 시위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서울시교육청 신문고에 민원도 제기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진 못했다. 김 군은 “7월부터 인권위에서 3차례나 조사를 했지만 선생님이 모든 사실을 부인해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교육청에 ‘문용린 교육감님께 드리는 말씀’으로 글을 썼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하지만 절차상의 이유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결국 1인 시위를 하게 됐다”며 “방학이 끝났지만 나를 죽이겠다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로 갈 순 없다”고 주장했다.
초등학생 신분으로 1인 시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 군은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학교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나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평화시위를 방해하고 협박도 했다. 8월 27일엔 교감 선생님까지 나타나 위협을 하며 주먹질을 해댔다. 경찰이 오고 아빠가 나서 교감 선생님을 말리려다 주먹으로 폭행을 당하면서 뒤로 넘어져 뇌진탕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학교는 “사실무근”이라며 김 군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학교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김 군의 담임교사는 1개월 휴직계를 낼 만큼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인권위에 반박자료도 제출한 만큼 오는 18일 결과발표를 보고 대응방안을 논할 것”이라며 “지금도 매일같이 우편, 전화, 방문을 통해 김 군이 다시 등교할 수 있게 설득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김 군의 민원을 접수하고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서울서부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양측의 주장이 너무 상반돼 인권위의 결과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다만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김 군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의 장학사는 “김 군이 속한 학급의 학부모 21명이 ‘담임교사는 그럴 분이 아니다’며 인권위에 단체 탄원서를 제출했다. 학생들도 단 한 번도 욕설을 하거나 폭행을 한 적이 없다며 김 군도 차별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증언했다. 평판 좋기로 소문난 교사라 휴직기간이 끝난 뒤 바로 복귀를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학교 관계자들은 김 군에게 접근조차 어려워 제대로 설득을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장학사의 설명에 따르면 김 군을 만나기 위해 현장에 나가면 ‘선생님들이 시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는 통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장학사는 “경찰들이 수차례 출동한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교감과 김 군의 부모님이 맞닥뜨린 적은 있으나 폭행을 가한 적은 없다고 들었다. 뇌진탕을 일으켰으면 고소장을 접수하고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 만한데 이후 특별한 사후 조치도 없었다”며 “하루빨리 김 군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