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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악마가 등장한 SK텔레콤 광고. 붉은악마측은 앞으로 대기업 행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겠다고 했다. | ||
지난달 2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에 운집한 ‘붉은악마’의 마지막 월드컵 카드섹션은 “한국프로축구(K리그)에서 다시 만나자”였다. “See You at K-League”를 네티즌들 사이에 통용되는 축약어로 표현한 것.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 또는 ‘국가대표 응원단’ 정도로 알려졌던 붉은악마는 2002한일월드컵을 거치는 동안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면서 4천7백만 전국민이 ‘붉은악마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원조 붉은악마들은 월드컵에서 나타난 국민적 성원이 한국 프로축구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CU@K리그’라는 카드섹션은 한국전이 열릴 때마다 한국팀의 승리를 염원하며 저마다 붉은색 티셔츠를 차려입고, 거리 곳곳에서 응원전을 펼쳤던 국민들의 마음이 국가대항전이 아니어도,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행사가 없다하더라도,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자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한 셈이다.
96년 ‘칸타타선언’으로 출범할 당시 수십여 명에 불과했던 붉은악마 회원은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회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2002년 7월 현재에는 회원수가 20만여 명이 넘는 거대조직으로 성장 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업들은 월드컵 기간 동안 표출된 국민적 에너지를 월드컵 이후에도 지속시키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골몰하고 있다. 특히, 월드컵 열기의 한 중심에 서 있던 붉은악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붉은악마는 차분한 가운데, 월드컵 이후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붉은악마는 경기장에서 소리지르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경기장을 찾고, 목청 높여 열심히 응원하는 것이 전부죠. 여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목적이 개입된다면 순수한 열정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거죠.” 붉은악마의 미디어팀장 신동민씨는 붉은악마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대구에서 터키와 3·4위전이 있던 날이에요. 그날 아침 서해에서 남북한 해군간에 교전이 있었는데, 붉은악마 사무국으로 여러통의 문의 전화가 왔어요. ‘서해교전’에 대한 붉은악마의 입장이 뭐냐는 질문이었어요. 축구가 좋아서 경기장에서 소리지르고 응원하는 사람들한테, 서해교전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묻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무슨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결사체도 아니고,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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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도 붉은악마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 을 쓰고 있지만 붉은악마측은 난색을 표명했 다. 사진은 시민들과 함께 응원중인 이회창 후 보(위)와 노무현 후보. | ||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국가대표팀 선수 가족들과 함께, 붉은악마 회원들도 초청하기 위해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붉은악마 회원 중에 20~30대 젊은층이 많다는 점에 착안, 20~30대 젊은이들과 붉은악마의 젊은 회원들이 공동 입당식을 갖는 방안을 간접적으로 제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붉은악마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붉은악마의 입장은 단호하다. 신동민씨는 “정치권이나 일반 대기업 등의 행사에 붉은악마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씨는 “축구 응원 이외 회칙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게되면 그 회원은 영구 제명된다”며 “개인적 차원에서라면 몰라도 붉은악마의 이름으로 정치 행사 등에 참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붉은악마가 정치 행사에 버젓이 이름을 내걸고 참석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회원간에 극심한 내분에 휩싸여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서포터 클럽을 잃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드컵 이후 붉은악마는 크게 세가지 진로를 놓고 내부 논의를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 제1안은 철저한 권한 이양을 통한 붉은악마 중앙 집행부의 축소다. 붉은악마는 전국적으로 지부와 지회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10개 프로축구단 서포터로 구성된 가맹단체가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중앙에 집중돼 있는 권한을 각 지부와 지회에 이양하고, 지부, 지회 중심으로 운영하되, 중앙 집행부는 인터넷 등을 통해 각 지부와 지회 활동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NGO식 운영이 논의되고 있다. 축구동호회 형태는 유지하되, 비대해진 조직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NGO 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하는 방안이다. 지금까지 붉은악마는 상주 직원없이 대학생이나 직장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방과후, 또는 퇴근 이후에 돌아가면서 활동해왔다.
그러다보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했고, 효율적인 회원관리 등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상근 직원을 선발, NGO식으로 운영하는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세번째로는 현재대로 운영하는 방안이다. 붉은악마 사무국이 중심이 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7월 중순께 붉은악마는 최고 결정기구인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투표를 통해 향후 진로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의원회는 운영위원과 운영위 추천회원, 지부장 추천회원 및 가맹단체 회원 등 7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붉은악마가 어떠한 진로를 선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붉은악마가 자신들의 마지막 카드섹션 ‘CU@K리그’를 통해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것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남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