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제철 부문 분할·합병 결정을 했다. 현대차 측은 “일관제철 사업의 경영 효율성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사진은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전경. 청와대사진기자단
증권가에서는 둘의 분할·합병으로 어느 쪽이 더 유리하고 불리할지 따질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득을 보는 쪽은 현대제철일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의 냉연강판사업부문을 흡수·합병함으로써 막대한 설비투자에서 발생한 차입금 규모를 줄이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쇳물 생산부터 제강, 열연강판·냉연강판 생산까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꿈꿨던 일관제철을 이룰 수도 있다. 또 합병 이후 현대제철은 총 자산 27조 원, 연 매출 20조 원에 이르는 거대 철강사로 올라설 수 있다.
반면 현대하이스코는 회사의 주력이자 핵심 사업을 떼어주는 일이다. 현대하이스코에서 냉연강판사업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자산만 놓고 볼 때 3조 2650억 원으로 현대하이스코 전체의 70%가 넘는다. 지난해 매출액 5조 4657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도 4000억 원가량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연강판부문을 분할한다면 현대하이스코 자산은 1조 182억 원으로 확 줄어든다. 또 냉연강판부문이 현대하이스코의 주력인 탓에 분할 후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
비록 현대하이스코가 분할 후 기존의 강관사업을 유지하면서 자동차 경량화사업 등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냉연강판부문 분할 여파를 만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 현대하이스코의 사업 위험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지적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하이스코에 대해 “주력인 냉연사업을 분할한 뒤 강관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면서 사업다변화 효과가 없어지고 사업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며 “계열과 영업긴밀도 수준이 떨어지는 등 사업 위험이 종전보다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이유로 현대하이스코 주주들이 반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영효율 극대화”라는 현대차그룹 주장과 달리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냉연강판부문의 분할·합병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에 철을 제공하고 현대하이스코가 이를 자동차용 냉연강판으로 제조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해온 탓에 일감몰아주기에 해당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냉연강판부문을 현대제철이 가져간다면 현대제철의 현대하이스코 몰아주기를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히려 불필요한 과정을 줄인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현재 현대제철 대주주는 기아차(21.29%), 정몽구 회장(12.52%)으로 현대차는 현대제철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반면 현대차는 현대하이스코 지분 29.37%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재계 일부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분할·합병이 성사될 경우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하이스코 주식을 현대제철 주식으로 교환, 현대제철의 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가 새로이 형성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신규순환출자금지법안을 피할 수 있는 데다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에도 효율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현대차 측은 “이번 분할·합병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나 지배구조와 전혀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