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공안 검사 출신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검찰 특수계 솎아내기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 비서실장은 검찰의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출신이다. 공안통 출신인 그가 지난 8월 청와대의 부름을 받은 지 약 한 달 만인 9월 초, 대표적인 특수통 출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돌연 중도 낙마하자 검찰 내부도 충격에 빠졌다. 이에 즉각 검찰 주변에서는 왕 실장이라 불리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의 모종 역할설이 흘러나왔다.
채 전 총장을 교체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그 ‘후예’들에 대한 대대적인 ‘솎아내기’가 시작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채 전 총장과 출신 성분이 동일한 ‘특수통’들을 대상으로 한 김 비서실장 발 ‘정리 작업’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급 관계자는 “오는 11월 검찰총장의 공석이 김 비서실장의 아바타로 채워질 것은 검찰 내에서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부분”이라면서 “문제는 내년 2~3월 봄 무렵이다. 이때가 검찰 인사철인데 아마도 김 비서실장이 채동욱 체제의 특수계 라인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정리를 그때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의 ‘플랜’이 성공하게 된다면 검찰은 완벽하게 김 비서실장 위주로 장악되게 된다.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제2의 봄’이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비서실장이 검찰 내 특수통 걸러내기 작업에 집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민정 및 검찰 관계자 다수는 올해 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국정원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자신이 직접 구성한 특별수사팀(TF)에게 맡기며 ‘특수통’ 식 수사를 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해석은 그동안 민주당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제기돼 온 의혹의 핵심이다.
민정 측 한 관계자는 “김 비서실장은 ‘특수계’ 검사들을 융통성 없는 ‘독불장군’ 유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공안통과 특수통은 애초부터 수사에 대한 사고 구조가 다르다. 때문에 김 비서실장 입장에선 채 전 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한 것에 큰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감히 검사 주제에 현 대통령을 흔들어? 이 뜻인 거지”라며 “(김 비서실장의) 최측근들 일부로부터 최근 김 비서실장이 더 이상의 개념 없는 수사는 있어선 안 된다는 기조로 ‘특수통 갈아엎기 플랜’을 은연 중 강조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채동욱 전 검찰총장, 여환섭 중앙지검 특수1부장, 윤대진 중앙지검 특수2부장.
검찰 수사의 상징적인 두 인물이 민감한 사안에 오르내리자 그들을 선배 검사로서 존중하는 공안통 출신 검사들까지 비판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 공안통 검사는 “김 비서실장의 ‘살생부’에 여환섭, 윤대진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설이 퍼지자 이를 접한 검사들이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김 비서실장은 무협지를 찍고자 하는 것인가. 왕년의 공안수법을 친정에다 쓰면 어쩌자는 것인가. (김 비서실장은) 공안통 대선배인데 마주보니 부끄럽다”고 밝혔다.
한편 김 비서실장은 검찰 내부의 격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특수통 걸러내기 작업과 함께 공석이 될 요직에 앉힐 인사들 구성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례로 지방의 K 차장검사가 요직에 배치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면서 조만간 검찰 주요 권력이 공안통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K 차장검사는 대표적인 공안 라인인 데다 대구 태생이다. 대구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한 그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도 동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기춘 실장의 검찰 갈아엎기 시도는 특수동 공안통 가릴 것 없이 무리한 계획이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 난기류를 뚫고 김 실장의 플랜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앞서의 민정 측 한 관계자는 “김기춘이라면 가능하다. 청와대 내부 역학관계를 단 3주 만에 갈아치운 인물이다. 괜히 ‘부통령’이라 불리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15년 지기 보좌진의 파워를 바닥끝으로 떨어뜨렸다. 이 정도면 ‘섭정’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김 비서실장 ‘플랜’의 성공 여부는 내년 3월 검찰 인사철에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김기춘 실장 기세로는 그 ‘봄’이 곧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