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결정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회사에 도착해서도 박 씨의 고민은 끊이질 않는다. ‘눈을 마주친 상사에게 인사를 해야 할까’ ‘기획안 글꼴은 어떤 것으로 해야 하나’ ‘보고서는 언제 제출하지’ 등등 결정해야 할 것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메신저를 통해 동료들에게 묻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답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결국 박 씨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 카페.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거리는 인터넷 카페에는 쉴 새 없이 글들이 올라온다.
박 씨도 예외는 아닌데 “오늘 팀장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언제 결재를 해야 하느냐”며 묻자 금세 댓글이 달린다. “지금 보고하면 퇴짜 맞을 것이 분명하다” “음료수와 함께 서류를 들고 가라” “퇴근 직전이 좋다”는 등의 ‘우문현답’이 또 다시 박 씨의 어깨를 누른다. 수많은 답변 중에 하나를 또 다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일처리는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인류 최대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처럼 심각해진 박 씨. 이번엔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서 “뭘 먹어야 할까요?”라는 글을 남기고 두 손 모아 ‘급답’이 오길 기다린다. 댓글을 종합하면 뷔페에 가야 할 수준이라 최종 결정의 몫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박 씨의 오전 일과를 보고 한 번쯤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일단 결정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폭이 넓어지면서 박 씨처럼 결정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연스레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을 찾던 사람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인터넷에 매달렸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묻고 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은 온라인 공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온라인 공간에 빠져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결정 장애가 심해진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것을 결정해달라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어떠한 선택에 앞서 그 분야의 전문가 조언을 구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긴 하나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아들을 얻은 안 아무개 씨는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3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데 ‘고민방’에는 24시간 글이 올라온다. 이사, 이직, 병원 선택 등 여러 사람의 조언을 구해야 하는 중요한 고민도 있지만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지금 쇼핑을 하고 있는데 어떤 게 어울리는지 골라 달라’는 글부터 ‘치킨을 시킬 예정인데 양념을 먹을까 후라이드를 먹을까요’라는 질문도 올라온다”며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온갖 후기를 다 봐야 안심이 되는 스타일이라 나 역시 습관적으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참조해 결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들 이름을 지어달라는 글을 쓰고 있더라. 아들이 평생 사용할 이름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정신과 전문의는 “결정 장애는 오랜 시간 축적된 악습관의 결과물이지 병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의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개선을 해야 할 필요는 있다. 결정 장애가 지속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사람이 소극적으로 변한다. 결국 우울증과 같은 질환을 야기할 수도 있기에 작은 것부터도 스스로 해결하고 선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