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다행히 김 총재 후임으로 임명되는 차기 총재는 임기가 2018년 3월까지여서 박근혜 정부와 함께 임기를 마칠 수 있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로서는 경제 운용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을 누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있다. 가장 큰 산은 차기 총재부터 처음으로 시행되는 인사청문회다. 지난 2012년 법률 개정으로 한은 총재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됐다. 그동안 한은 총재 지명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대통령 임명으로 묻히는 일이 많았지만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상처를 입고 낙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근혜 정부에서만 벌써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이 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나 인수위 시절부터 알고 지내 그 자리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로 알려졌지만 청문회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김 총재의 잔여 임기 5개월은 차기 총재 후보자가 청문회를 준비하기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 셈이다. 금융업계와 관가에서는 차기 총재 후보에 대한 하마평이 떠돌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흘러나오는 이름이 없어 차기 총재는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왼쪽부터 신현송 교수, 박철 전 부총재, 이주열 전 부총재.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업계와 관가가 첫손에 꼽는 차기 총재감은 신현송 미 프린스턴대 교수다. 신 교수는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30세에 교수로 임용됐을 정도로 학식이 높다. 특히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 고문을 지냈고, 뉴욕 연방은행 자문역을 지내는 등 중앙은행에 대한 이해가 깊어 신 교수의 금융 관련 논문은 각국 중앙은행에서 거의 매뉴얼로 다뤄질 정도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신 교수를 차기 한은 총재로 임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지만 BIS(국제결제은행)가 신 교수를 2014년 5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차기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내정했다고 발표한 상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신 교수만큼 한은 총재에 적합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BIS의 차기 수석 이코노미스트 내정 사실로 봐서 박 대통령이 신 교수를 임명하겠다는 언질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은 차기 중앙은행 총재 후보를 놓고 시장에서 활발한 인물 토론이 이뤄지는 데 반해 우리는 여전히 막후에서 일이 진행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 내부 인사인 박철 전 한은 부총재와 이주열 전 부총재도 한은 총재로 손색이 없다고 보고 있지만 이들은 박 대통령과 연줄이 별로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인 현오석 부총리,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보면 박 대통령과 안면이 있는 관료나 학계 출신이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 인사를 보면 ‘한 번 이상 만나본 인물 중 충성심이 높은 인물을 뽑는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경제 부문에서는 관료 출신을 중용하는 면도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김광두 서강대 교수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이 가능성은 있지만 딱히 ‘깜’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박 대통령 인사는 언론에 언급되면 탈락하는 분위기여서 이름이 더 안개에 가려져 있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