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은 주요 사업 거점인 베트남 출국을 위해 조석래 회장의 출금 조치 일시 해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일요신문 DB
효성 측은 즉각 출국금지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베트남은 효성에 사업상 중요한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효성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사업상 긴급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 단 3일도 보내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하소연했다. 효성 측은 박 대통령이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순간까지 일시적이나마 조 회장의 출국금지 조치 해체를 바랐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지난 10월 22일. 검찰은 KT 분당 본사와 광화문 사옥, 이석채 회장과 KT 주요 임직원들의 자택 등 무려 16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이와 함께 이 회장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 역시 해외 행사를 앞둔 터였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열리는 ‘아프리카혁신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것. 이 회장 측은 출국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르완다행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이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될 것으로 전망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석래 회장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석채 회장은 지난 10월 26일 오전 르완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적지 않은 이들이 당황스러워했다. 출국금지 조치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니냐는 말부터 KT 측이 일시적으로 해제해줄 것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뒷말이 무성했다. KT 측은 “출국금지 조치가 없었다”며 이 회장의 출국이 예정된 일정임을 강조했다. 더욱이 이 회장은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을 만나기 위해 당초 계획했던 귀국 일정까지 미뤘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처음부터 이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없었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출국금지 조치가 없었다면 KT 측이 이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불거졌을 당시 즉각 해명하든 부인하든 뚜렷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험상 이제 와서 처음부터 출금 조치가 없었다는 말은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이석채 회장 취임 후 영입된 이른바 ‘올레 KT’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힘이 발휘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KT를 맡은 2009년 이후 KT에 영입된 인사들을 가리켜 ‘올레 KT’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주로 친정부 인사나 이석채 회장 측근으로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이 정치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올레(Olleh) KT는 이석채 회장이 KT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인 2009년 7월 KT가 새롭게 변경한 CI(기업 이미지 통합)다. 이 회장 취임 전부터 KT에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은 ‘원래 KT’라는 말로 영입 인사들과 구분하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
효성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지난 10월 11일 효성그룹 본사와 효성캐피탈, 조석래 회장 자택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14일에는 조 회장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져 있는 고 아무개 상무를 소환조사한 것을 비롯해 해외법인 관계자들을 잇달아 소환했다. 효성 측은 “비자금은 한푼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세청과 검찰이 동시에 들어오는데 사기업이 반발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럴 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석채 회장은 르완다 출장 중일 때만 해도 검찰 수사와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이 회장은 배임 혐의에 대해 “그걸 믿느냐”고 반문하며 “우리는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라는 말로 자신의 투명함과 결백함을 강조했다. 또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KT 회장직에서 스스로 내려오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 지난 1일 검찰은 또 다시 KT 분당 본사와 서초·광화문 사옥, 주요 임직원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10월 22일에 이어 두 번째로 똑같은 건물을 압수수색한 것. 지난 1일은 이 회장이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던 날이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귀국을 미루자 검찰은 두 번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검찰은 “건물은 같지만 지난번 압수수색한 곳과 사무실이 다르다”면서 “서둘러 할 필요가 있었다”며 두 번째 압수수색 이유를 밝혔다. 이 회장은 결국 귀국 후 하루 만에 백기를 들었다.
두 기업의 회장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오너와 비오너 전문경영인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오너인 조석래 회장의 경우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비오너 전문경영인인 이석채 회장은 크게 잃을 게 없다는 의미에서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솔직히 이 상황에서 출국을 강행할 만큼 르완다 행사가 대단한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이쯤 되면 알아서 거취를 정하라는 신호일 수 있는데 강경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뭔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