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훈련 중인 KT 위즈 선수들. 야구계 인사들은 ‘간달프’ 이석채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KT 창단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시 검찰은 “KT 경영진이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해 회사에 수백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이 회장의 배임혐의를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검찰 수사가 고강도로 진행하자 이 회장은 결국 11월 3일 사의를 표명했다.
문제는 이 회장의 사임으로 10구단 KT가 큰 타격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야구단 창단을 계획하고, 10구단 선정 경쟁에서 주도적 선장 역할을 한 이가 이 회장”이라며 “이 회장의 낙마로 KT 야구단의 모든 계획이 사실상 올스톱됐다”고 털어놨다.
사실이다. 이 회장은 누구보다 10구단 창단에 깊이 관련돼 있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신생구단 창단을 제의받은 것도 이 회장이었고, 치열한 10구단 선정 경쟁을 진두지휘한 이도 다름 아닌 그였다.
KT 내부 인사는 “10구단 창단 주체로 우리가 선정됐을 때 이 회장이 ‘한국 최고의 명문 야구단으로 만들자’는 건배 제의를 했다”며 “사임 전까지 ‘야구단 창단식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할 정도로 야구단에 남다른 애정이 있던 분을 잃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발전기금 200억 행방은?
이 회장의 낙마는 곧바로 야구단 창단 일정 차질로 이어졌다. 애초 KT는 11월 11일 경기도 수원에서 성대한 야구단 창단식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사임하며 창단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KT 홍보담당자는 “지금처럼 그룹이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모그룹의 수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창단식을 개최할 수 있겠느냐”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일단 KT는 신임 회장이 결정된 뒤 창단식을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KT 회장 선임이 계속 미뤄지면 창단식은 해를 넘길 수밖에 없다. 만약 창단식이 내년으로 미뤄진다면 대혼란이 예상된다. 11월 20일부터 선수단이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사실상 20일 이전까지 새 회장 취임이 어렵다고 판단할 때 창단식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내년 2월까지 선수단이 미국, 타이완에 머무를 예정이므로 창단식은 늦으면 3월에 열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의 사임으로 혼란에 빠진 건 KBO도 마찬가지다. KBO는 이 회장이 사임하며 KT가 10구단 선정 당시 약속했던 여러 공약을 ‘없던 일’로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회장의 공약이 원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16일 이병석 대한야구협회장과 ‘한국 야구발전과 아마추어 야구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1년에 6억 원씩 10년간 총 60억 원을 아마야구에 지원하고, 마케팅 등으로 올리는 부대수입 40억 원을 합쳐 최대 100억 원을 아마추어 야구 지원비로 쓰겠다”고 공표했다.
당시 일부 야구인은 “반년 사이 KT가 야구계에 약속한 금액이 무려 300억 원을 넘는다”며 “과연 이 돈을 약속대로 지원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KT는 그럴 때마다 이 회장의 뜨거운 야구 사랑을 설명하며 “대기업 KT가 그깟 300억 원에 흔들릴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사임하며 300억 원은 공수표가 될 위기에 처했다. KT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야구인은 “이 회장이야 10구단 창단을 주도했으니 300억 원이 아깝지 않을지 몰라도 신임 회장에겐 ‘과도한 지원금’으로 비칠 수 있다”며 “만약 신임 회장이 ‘야구계 지원금은 전임 회장이 결정한 사안이고, 나완 관계없다’고 모른 체한다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KT는 아직 200억 원의 야구발전기금을 KBO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야구협회에 최대 1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정식 계약이 아닌 단순 업무협약이라, 언제든 파기 가능한 약속으로 드러났다.
KBO는 일단 KT를 믿고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KBO 관계자는 “KT가 중소기업이면 모를까 한국을 대표하는 통신 대기업인 만큼 야구발전기금 200억 원을 성실히 납부할 것으로 믿는다”며 “1년 내 납부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 KT 구단 수뇌부도 위험하다?
야구계는 이 회장의 사임이 KT 구단 수뇌부의 연쇄 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권사일 KT 야구단 사장은 이 회장 배임혐의와 관련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KT는 “단순 참고인 조사에 불과했다”며 별 문제가 아니라는 자세다. 그러나 야구계는 “유무죄와 관계없이 검찰 소환으로 권 사장이 ‘이 회장의 핵심 측근’이란 사실이 드러났다”며 “과연 신임 회장이 전임 회장의 측근을 야구단 사장으로 계속 둘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KT 선수단은 경남 남해에서 예정된 훈련 스케줄에 맞춰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구단 역시 신임 코치를 영입하며 창단 골격을 갖추고 있다. 폭풍전야 속에서 선수단만 안정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