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7일 입원중인 서울대병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총선 및 향후 당대책 등을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 ||
또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해체 문제도 ‘교통정리’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재오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비대위를 장악한 뒤 대과 없이 당을 이끌어 온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당을 총선 체제로 전환하면서 비대위 멤버들의 역할 재조정론이 제기 돼 당내 권력판도 재편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검찰의 마지막 대공세도 최 대표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8일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최측근인 서정후 변호사가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검찰의압박이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며 속을 태우고 있다. 최대표가 2003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세 고개를 살펴봤다.
최병렬 대표가 첫 번째로 넘어야 할 ‘보릿고개’는 중진들의 물갈이다. 특검으로 어수선했던 당의 분위기가 물갈이론으로 또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 물갈이의 첫 파문은 최 대표가 단식기간에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에게 “영남에서 현역 50% 정도는 갈아야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뒤부터다.
이 과정에서 최 대표는 자신이 직접 이런 사실을 언론에 말하지 않고 측근의 입을 통해 보도하게 함으로써 언론 플레이의 인상이 짙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 대표가 얼마나 물갈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물갈이는 그 폭발력과 함께 최 대표의 입지를 또 한번 약화시킬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 대표의 ‘결심’은 단호해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물갈이는 현재 5단계 로드맵에 따라 착착 진행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먼저 1단계는 해당 의원들이 알아서 자진 사퇴하는 것으로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다. 2단계는 경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의원의 경쟁력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경우고, 3단계는 경선을 통해서 물갈이를 시도하는 것. 4단계는 공천 등을 통해 당이 강제적으로 ‘내쫓는’ 경우고, 마지막 5단계는 각 지역구와 전국구의 영입 대상자를 발표해 자연적 퇴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특급 소방수’로 나설 인물이 바로 김문수 영입위원장이다. 대부분의 당 관계자들은 “앞으로 김문수 의원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며 공공연히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도 이런 기대에 부응해 “앞으로 물갈이와 관련해 칼자루를 휘두르는 일만 남았다”고 밝힐 정도로 ‘가지치기’에 상당한 진척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내에서 ‘못말리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의 한 측근은 “김 의원은 지난 대표 경선 때 공명선거위원장을 맡아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당의 핵심 과제가 세대교체라고 볼 때 사심 없는 그가 틀림없이 물갈이 정국을 잘 돌파해낼 것이다. 요즘도 밤낮으로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위원장의 ‘독주’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대위는 위기국면용이지 총선용은 아니다. 특검 정국도 끝났으니 새로운 체제로 총선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처럼 강경파가 득세하면 또 한번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염려하기도 한다. 최 대표는 “바뀔 타이밍은 됐지만 검찰 수사과정에 뭐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형근 의원의 총선기획단장 기용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형근 의원의 경우 구시대 이미지가 강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의 총선기획단장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의 기획사정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동시에 총선 전반에 대한 기획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셋째, 최 대표는 검찰의 마지막 대 공세를 넘어야 총선 고지에 과반수 깃발을 꽂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월8일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사조직인 ‘부국팀’ 부회장이자 법률고문을 맡았던 서정우 변호사가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되자 검찰의 전방위 공세가 시작됐다고 걱정하고 있다. 사실 이 돈이 당과 무관하게 이 전 후보의 사조직에서만 운용됐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검찰은 이 돈이 당의 공식 조직이나 직능단체로 흘러들어갔을 경우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1월 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조직 자금이 당의 공식 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은 또다시 대선자금과 관련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의 마지막 대공세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수사로 타격을 받겠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점을 철저하게 부각시켜 정면 대응해 나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배고픔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물갈이, 비대위 정리, 검찰 압박의 ‘삼재’를 또 한번 넘어야 할 처지에 빠졌다. 이미 단식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써버린 최 대표. 이번에는 과연 어떤 ‘카드’로 한나라당을 구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