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 송파경찰서에는 비슷한 사건 여러 개가 잇따라 접수됐다. 휴대전화 화상채팅으로 만난 여성과 음란행위를 하고 난 뒤 자신의 얼굴과 알몸이 담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한 직장인 A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가 됐다며 황당해했다. 그날도 A 씨는 평소처럼 휴대전화 화상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상대 여성은 A 씨를 ‘오빠’라 부르며 친근하게 굴었고 어느 순간 먼저 옷을 벗으며 음란채팅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유혹에 넘어간 A 씨도 자신의 하의를 벗어버렸고 둘의 음란한 대화는 상당시간 계속됐다.
그런데 한창 알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상대 여성이 갑자기 볼륨을 낮추더니 “앱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A 씨에게 하나의 사이트 주소가 적힌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과 더 대화하고 싶으면 이 사이트에서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내려 받으라는 친절한 설명도 보탰다. A 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해당 주소를 클릭해 프로그램을 내려 받았는데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는 해킹용 악성코드에 감염되고 말았다. 물론 A 씨는 그때까지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프로그램을 내려 받은 것을 확인한 여성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A 씨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대화내용은 물론 A 씨가 스스로 옷을 벗고 알몸이 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확보하고 있다며 돈을 요구한 것. 20분 안에 현금 100만 원을 보내주지 않을 시 휴대전화 주소록에 저장된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는 살벌한 협박도 잊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A 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여성이 정해준 시간을 넘겨버렸다. 속으론 ‘어떻게 내 지인의 전화번호를 알까’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이내 끔찍한 현실이 닥치고 말았다. 상대 여성이 진짜 A 씨의 몇몇 지인들에게 영상을 보내버렸고 깜짝 놀란 그는 부랴부랴 700여 명에 이르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 해명하는 수고를 치러야만 했다.
이처럼 수도권을 시작으로 온라인 꽃뱀에 당한 피해자들이 나타나더니 이윽고 전북, 충북, 대구 등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덩달아 피해자 숫자와 피해금액도 엄청난 규모로 늘어났다. 가장 최근에는 대구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B 씨가 피해를 입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온라인 꽃뱀들의 수법도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B 씨는 지난 5일 오후 10시쯤 자신의 집에서 스마트폰 랜덤 무료 채팅 앱에 접속해 상대를 물색하다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21살 ○○이에요. 스카이프(skype)에 접속하면 알몸 보여줄게요”라는 내용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B 씨는 결국 스카이프 앱을 내려 받아 나체의 여성을 만났다.
서슴없이 음란행위까지 보여주던 여성은 “당신의 얼굴과 은밀한 곳을 보고 싶다”며 B 씨를 유혹했고 결국 그도 옷을 벗었다. 그 뒤로는 앞서 A 씨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B 씨가 송금을 거부하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B 씨가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몇 분 후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받자 낯선 남자가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한다. 돈 없으면 빌려라. 못 빌리면 죽어. 죽을 수밖에 없어”라며 협박을 한 것이다. 놀란 B 씨는 가족과 지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알게 될까 밤새 고민을 했지만 결국 경찰에 신고하는 길을 택했다.
두 사람의 사례처럼 전국에서 온라인 꽃뱀에 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하자 충북경찰청은 집중수사 끝에 이달 초 공갈단 일당을 잡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무려 17명에 달한 온라인 꽃뱀 공갈단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조선족 총책 및 프로그래머를 두고 기업형으로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 남성만도 500여 명이었으며 피해금액도 14억 원에 달했다.
알려진 대로 남성들을 유혹해 찍은 알몸 동영상을 미끼로 협박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으며 심지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심어놓은 악성코드로 파밍사이트 접속을 유도해 계좌잔액을 빼내기도 했다.
경찰은 “최근 음란 화상채팅을 유도한 뒤 녹화영상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신종 온라인 꽃뱀 사기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정상 경로를 거치지 않은 모바일, 컴퓨터에 접속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남자인 척하지 마” 뚝!
전국구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꽃뱀’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피해신고만도 716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불과 5개월 사이에 접수된 것이지만 피해액만 37억 5000만 원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꽃뱀들은 큰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보통 100만 원 정도를 요구하는데 대부분 직장인 남성들이라 창피를 당하느니 돈을 주자는 생각을 해 피해신고가 제대로 접수되지 않고 있다”며 “수사 중 우리가 먼저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면 오히려 ‘그런 일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신고가 되지 않은 피해자들까지 고려하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온라인 꽃뱀이지만 최근 경찰의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활동이 비교적 뜸해진 상황이라고 한다. 기자도 사흘 동안 밤마다 유명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꽃뱀들을 만나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가끔 쪽지를 먼저 보내는 여성들이 있었으나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남자인 척하지 말라” “정체가 뭐냐”며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여성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화상채팅 경험을 묻는 여성도 있었지만 기자의 너무 적극적인(?) 태도에 이내 대화를 중단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한 차례 적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피해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만큼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