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석 전 사장의 경우, 지난 2011년 말부터 현대모비스 총괄사장직을 맡아온 현대차그룹 내 자동차 연구개발 분야 1인자로 알려져 있다. 입사 후 30년여 동안 오로지 자동차 연구개발 분야에만 매진해왔다. 그런 능력과 경험이 한때는 회사 성장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인정받아 중용됐지만, 어느덧 물러날 시점이 왔다. 현대모비스 내부에선 사장 교체를 발표 직전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 앞서 지난 11월 현대차의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김용칠 부사장(설계담당), 김상기 전무(전자기술센터장)의 사표를 수리한 이유도 품질관리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분위기 쇄신 효과도 노린 듯하다.
12월 초 단행된 삼성그룹 인사에선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 정연주 삼성물산 고문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실 박 부회장은 삼성에선 드물게 10년 동안 사장으로 장수한 뒤 명예롭게 2선으로 비켜섰다. 지방대 출신으로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의 최고 자리를 지킨 입지전적인 인물인 그는 삼성이 학연, 지연 등의 구습에 따른 순혈주의 인사를 타파해온 정책의 상징적 존재였다.
삼성물산에선 정연주 부회장과 함께 그를 보좌하던 ‘홍보맨’ 정원조 전무가 물러났다. 이로 인해 연쇄적인 그룹 내 홍보라인의 이동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 언론인 출신 인사들이 외부에서 들어오거나 내부에서 중용되면서 득세를 했다. SBS 출신의 백수현 전무, <조선일보> 출신의 이준 전무, <문화일보> 출신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몸담았던 백수하 상무 등은 얼마 전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이다. 이번에 임원이 된 박효상 박천호 상무는 각각 <한겨레>,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
강덕수 회장이 신사업 강화를 위해 외부에서 영입했던 고위 공직자 출신인 이희범 회장과 신철식 부회장은 이미 올 초 경영이 어려워지자 퇴사했다. 강 회장이 홀로 혹독한 시련을 겪는 동안, 그를 떠난 이 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아오다 지난 11월 LG상사 부회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재계에선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 프리미엄’이라고 보고 있다. STX그룹에 몸담았던 임원들도 다른 기업으로 흩어져 ‘각자도생’하고 있다. 추운 겨울, 새 둥지를 찾는 철새가 된 셈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화려하게 컴백한 경영인들도 있다. 최근 KT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대표적이다(관련 기사 38면). 황 전 사장에 대한 내정 소식이 알려진 뒤 요즘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는 연일 기자들이 그를 보기 위해 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회장 후보자 신분으로 KT 경영진들의 업무보고를 받고 경영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 내정자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지난 18일 출근 중에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은전’을 베풀었다. 황 내정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직책을 맡은 것이 아니어서 질문에 답을 할 순 없지만 인사나 나누자”며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고 한다. 그에게 쏠린 세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이석채 전 회장과 너무나 대비되는 풍경이다.
사실 산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CEO 출신들은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영입 대상으로 물망에 올라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삼성그룹 출신 인사들이 단연 1순위다. 최근 메리츠화재는 남재호 전 삼성화재 부사장을 대표이사에 임명했다. 동부그룹도 계열사 가운데 (주)동부와 동부하이텍의 현 CEO도 삼성 출신이다. 지난 10월 CJ의 CEO가 된 이채욱 대표도 삼성물산 출신이다. 지난 12월 초 태광산업에 영입된 최중재 사장과 조경구 상무도 그렇다. 오세영 SK하이닉스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무래도 경쟁에서 이겨 본 사람이 그 방법과 맛을 안다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면서 “삼성그룹에서 조직을 다뤄보고 실적을 냈던 경험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이 많다”고 전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