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창업시장에서는 업종별 희비가 엇갈렸다. 창업자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업종은 단연 치킨호프전문점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통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도 불황의 여파는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크라운베이커리가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 철수를 선언,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사업 중단 방침을 뒤늦게 전달하는 등 깔끔한 마무리를 하지 못하면서 갈등을 빚으며 논란이 일었다.
반면 대형 자본을 중심으로 한 외식시장 인수합병 바람도 거셌다. 지난 7월 초 가맹점수가 1000개가 넘는 치킨브랜드 ‘비에이치씨(BHC)’를 씨티그룹이 인수했고, 미래에셋은 ‘커피빈앤티리프(Coffee Bean&Tea leaf)’를 인수했다. 커피빈은 전세계 22개국 750개 이상의 체인점을 운영 중인 대형 커피 체인이다. 할리스커피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인수했고, (주)썬앳푸드가 운영했던 ‘스파게띠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브랜드 (주)꼬레뱅 보나베띠에 인수됐다. 대형 자본이 창업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창업시장에 40~50대 퇴직자들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업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3년 한 해 동안 업종별 희비도 엇갈렸다. 지난 12월 12일 ‘점포라인’에서는 2013년 점포 및 상가투자 시장 권리금 변동 추이를 발표했다. 올해 매물로 나온 서울 소재 점포 중 22개 주요 업종 6332개 점포를 따로 추려 조사한 결과 권리금이 가장 많이 오른 업종 즉, 창업자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인 업종은 단연 치킨호프전문점이었다. 치킨호프전문점의 권리금은 지난해 1억 2048만 원에서 올해 1억 7472만 원으로 45.02%(5424만 원)올라 상승률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치킨호프 업종은 국민 메뉴로 부상한 ‘치맥효과’의 최대 수혜업종이라는 평이다. 직접 매장을 찾아 갓 튀겨낸 뜨거운 치킨을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계절과 상관없이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치킨호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권리금 상승률을 보인 업종은 의류점. 의류점 권리금은 지난해 7700만 원에서 9983만 원으로 29.65%(2283만 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의류점이 최근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아 재기에 성공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인파가 몰리는 유명상권 내 입지 좋은 점포에 입점해 옷값이 싸고 소비주기가 빠른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단 같은 기간 의류점 월세가 228만 원에서 323만 원으로 41.67%(95만 원) 올라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은 고정비용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권리금 상승세를 탄 업종은 피자(8541만 원→1억 832만 원, 26.82%증가), 맥주(1억 820만 원→1억 3194만 원, 21.94% 증가), 퓨전주점(1억 1182만 원→1억 3624만 원, 21.84% 증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창업자들의 관심이 가장 시들해진 업종 1위는 편의점이 차지했다. 사진은 지난 6월 편의점주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은 매출이 꾸준하고 관리가 용이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불경기에 강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창업수요가 꾸준했으나 최근 터져 나온 부정적인 이슈들 때문에 당분간은 창업수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으로 권리금이 떨어진 업종은 미용실(6286만 원→4653만 원, 25.98% 감소), 피부미용실(7786만 원→6246만 원, 19.78% 감소), 노래방(1억 1976만 원→1억 589만 원, 11.58% 감소), 레스토랑(1억 4666만 원→1억 4141만 원, 3.58% 감소) 순으로 나타났다.
점포라인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2월 8일까지 매물로 등록된 서울 소재 점포 8191개 중 점포 146㎡(44평) 기준 평균 보증금은 5668만 원, 평균 권리금은 1억 2753만 원인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보증금과 권리금 모두 2008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한 수치다. 올 들어 보증금과 권리금이 크게 오른 것은 상대적으로 소비자가 많이 모이는 상권을 중심으로 창업 수요가 집중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업종별 점포 권리금은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매출이 점포나 제품 자체의 문제보다는 사회적 이슈와 소비자 트렌드 변화 때문에 증가하거나 감소했다는 것. 점포라인 김창환 대표는 “물가 상승과 상권 내 A급 입지에 대한 수요 증가 등으로 권리금은 물론 보증금과 월세 또한 꾸준히 오르는 추세”라며 “금융권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상가를 매입해 임대수익을 내려는 투자자가 늘고 있는 만큼 보증금과 월세는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창업 전문가들은 2013년 창업시장이 대체적으로 양적, 질적으로 저하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창업컨설팅 스타트비즈니스 김상훈 소장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외식창업시장에는 1억 원 내외의 소자본 창업자를 겨냥한 아이템이 봇물처럼 생겨났던 한 해였고, ‘스몰비어’를 필두로 ‘밥버거, 소형 커피, 각종 테이크아웃 간식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반면 동태탕 등 해산물 관련 음식점들은 일본 방사능 문제로 다소 위축된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다가올 2014년 창업시장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안타깝게도 2014년 창업시장 역시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2014년 경제성장률이 2.6%에서 3% 중후반대로 성장한다고 해도 즉시 창업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창업시장의 주요 지표 중 민간소비율 증가율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2014년 중 민간소비율이 2.6%로 2013년 1.9%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가계부채 부담 지속, 영세 자영업자 증가,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지속 등이 가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전망도 함께 내놓은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4일 ‘2013 대한민국 벤처·창업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복합화는 최근 경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표적인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서로 보완이 되는 제품을 결합한 콜라보레이션 업종의 경우 매출 공백기를 줄여주어 더욱 주목된다고. 물세탁과 드라이클리닝을 결합한 멀티세탁편의점, 한 매장에 세계맥주 호프와 면요리, 닭강정까지 결합한 치킨포차, 캐쥬얼 이탈리안식과 치킨메뉴를 결합한 이탈리안치킨카페, 전통국수와 파스타를 결합시킨 분식 등은 콜라보레이션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에게 웰빙을 내세운 매스티지 업종이 인기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레스토랑형 맥주전문점, 샐러드바와 샤브샤브전문점의 결합 등 대형 전문음식점이 이에 속한다. 최근 증가한 화이트컬러 출신 베이비부머들은 주로 ‘블루칩’에 투자하는 경향이 강한데 박람회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주식시장이 불황일수록 투자자들은 안전한 블루칩을 찾는데, 창업시장도 마찬가지다.
창업시장에서 블루칩은 가맹본사의 외형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즉,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성공한 브랜드, 대기업이 운영 중인 브랜드, 직영점을 많이 운영하는 브랜드 등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블루칩의 특징은 브랜드 파워, 가맹점 매출액, 본사 자본력, 세 가지로 요약된다.
업종별로 전망을 예측해보면 외식업 시장에서는 ‘2080 나홀로족’을 겨냥한 음식점이 강세를 띨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 음식점들도 1인 좌석을 도입해야할 정도로 1인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 경기불황 여파로 1억 원 미만의 초소형 음식점이나 서민·복고형 음식점을 비롯해 올해 하반기부터 출점을 시작한 스몰비어 등 선술집형 맥주집의 인기는 2014년에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판매업 분야에서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판매점 즉 노점형 아이템 증가 및 이동식 판매점과 온라인을 결합한 융합 판매점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한 업종은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우리 먹거리, 뷰티&헬스, 남성용품(셔츠, 타이, 화장품) 판매점 등이다.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맞춤형 뷰티와 건강서비스업의 약진이 예상됐다. 특히 심리적인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서비스 콘셉트와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는 뷰티 서비스 콘셉트의 사업모델이 늘어나고, 건강과 취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레저스포츠 등의 사업아이템들은 여전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
배달 NO! 매장 OK!
반면 배달만 하는 치킨점의 경우 권리금 하락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25개 업종 중 권리금 낙폭이 가장 컸으며 매년 같은 기간 기준으로 사상 최저인 것으로 밝혀졌다. 점포라인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배달 위주인 치킨점보다 매장 위주의 치킨 주점을 찾는 추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창업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서울 구로구에서 카페형 치킨전문점을 운영하고 이 아무개 씨(35)는 “예전에 5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점포를 함께 운영했는데 카페형 매장이 매출이 30% 정도는 더 나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배달 점포는 치킨 판매에 집중하는 반면 카페는 치킨과 더불어 주류 판매 비중도 높기 때문”이라며 “투자비용이 다소 높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카페형 매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수현 사장은 “요즘 소비자들 이왕이면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점포를 선호하다보니 인테리어비용이 과하게 책정된 곳이 많다”며 “본사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지 꼼꼼히 따져보고, 권리금이 없는 점포를 택해 초기 창업비용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