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회장.
그동안 창업주 김재철 회장과 함께 그룹 경영을 도맡아 온 김 회장의 매제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68)은 이번 인사에서 직책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임기가 오는 3월까지라 자연스럽게 ‘젊은 피’ 오너 2세들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김남정 신임 부회장은 차남이다. 김 회장의 장남 김남구 부회장(51)은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03년 옛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 2004년 동원그룹에서 금융업을 계열분리했다. 김 부회장은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바꾸고 사장으로 일하다 지난 2011년 2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금융업인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차남 김남정 신임 부회장이 식품부문을 포함한 동원그룹을 맡으면서 김재철 회장의 2세 경영 승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됐다.
보통 오너 2, 3세 경영모드에 들어가는 재벌가들은 그룹의 모태가 되는 업종이나 그룹을 이끌 수 있는 핵심 사업의 경영권은 장자에게 넘겨주는 모습을 보인다. 동원그룹의 모태는 창업주 김재철 회장이 1969년 설립한 수산전문기업인 동원산업이다.
이러한 동원그룹을 장남이 아닌 차남이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재철 회장이 장남에게 금융업을 맡김으로써 동원그룹이 식품사업이 아닌 금융업으로 일종의 체질개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고 관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 측은 두 기업은 이미 계열 분리한 상태기 때문에 함께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관계자는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계열분리 이후에 전혀 관련이 없다”며 “경영에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 역시 “두 기업 사이에는 어떠한 교류가 없다. 직원들이 파견 가는 경우도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주식지배구조상 완전히 분리돼 있다. 김남정 신임 부회장은 지난 3분기 기준 동원그룹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주식 지분 67.98%를 보유하며 1대주주에 올라있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F&B, 동원시스템즈, 동원CNS 등 8개 자회사와 손자·증손 회사의 주식을 50~100% 소유하고 있는데, 김남구 부회장이나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지분이 투자된 곳은 없다.
이는 한국투자금융지주도 마찬가지다. 김남구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 지분 20.23%를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7개 자회사를 단독 출자해 지분 전부를 보유하고 있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 모두에 1%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는 김재철 회장뿐인데, 김 회장은 각각 24.50%와 1.09%를 소유하며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구 부회장, 김남정 부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차남 김남정 부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되면서 그룹 경영을 책임지게 됐다.
김남구 부회장의 의지에도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금융업계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업계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모습도 아니다. 지금의 금융업계에선 현재의 구도를 깨고 앞서 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동원그룹은 식품제조분야에서는 국내 정상을 달리고 있다. 특히 캔참치 부문은 30년여 동안 국내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지난 3분기에도 시장점유율 72.3%를 기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신임 부회장은 국내외 인수합병을 통한 동원그룹의 핵심 역량 강화와 그룹 미래전략 수립 등의 업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동원그룹은 새로운 사업 모색을 위해 미국 1위 캔참치 업체인 스타키스트와 세네갈의 SNCDS, 대한은박지 등을 인수했는데, 김 신임 부회장은 스타키스트의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아왔다.
앞서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은 아들들을 원양어선, 공장, 백화점 등 일선 현장에서 근무시키며 엄한 경영 수업을 시켜온 것으로 유명하다”며 “그런 도전 정신이 김남구 부회장으로 하여금 금융업에 뛰어들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