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 수사 결과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4000억 원 부당대출 혐의가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지점장 등은 부당대출 과정에서 은행 여신 담당 직원에게 대출금액을 조작해 쓰도록 지시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은행 본사 건물. 일요신문 DB
그로부터 2년 후, 일본금융청은 국민은행 도쿄지점을 정기 감사하면서 수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도쿄지점에서 야쿠자의 자금을 세탁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의혹이 이는 야쿠자의 자금은 정확히 ‘4억 5000만 엔’에 달했다. 알고 보니 문제의 자금을 예치한 고객은 2년 전 상속금을 맡긴 바로 그 일본인 여성이었다. 감사 결과 일본인 여성은 일본의 한 야쿠자의 내연녀 딸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은행 도쿄지점 측은 “고객 블랙리스트 명단에 여성이 없어 야쿠자 자금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여러 조사 결과 당시 해명은 받아들여졌지만 도쿄지점은 일본금융청의 집중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일본에서 은행이 야쿠자 자금을 관리하는 것은 엄격하게 불법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후 국민은행 본사에서도 도쿄지점에 대한 감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본금융청의 집중 감시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도쿄지점의 충격적인 실체를 알아내게 된다. 부당대출 및 부실대출 혐의를 대거 포착하게 된 것. 부당대출로 의심되는 액수는 자그마치 ‘2000억 원’에 달했다. 국민은행은 즉시 금감원에 이 사실을 보고한 뒤, 도쿄지점 전 지점장 이 아무개 씨(57)와 직원 2명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은 도쿄지점에 대한 즉각적인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주목한 것은 ‘불법 커미션’이었다. 부당대출 뒤에는 검은 돈이 오고갔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뒷돈이 오고 갔을 것으로 확신하고 계좌추적을 한 결과 대출 커미션을 차명계좌로 받은 흔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금감원이 파악한 대출 커미션은 ‘20억 원’에 달했다. 부당대출과 연관된 비자금의 흔적이 처음으로 덜미를 잡힌 것이다.
금감원은 대출 커미션의 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애초 이 전 지사장 등은 2008년부터 부당대출을 계속해서 이어오던 터였다. 금감원에 따르면 도쿄지사는 지난 5년 동안 20여 개 일본 현지 기업에 부당대출을 해준 뒤 사례비로 수수료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수수료를 다시 일본 현지 한국기업 명의의 차명계좌로 입금한 뒤, 이 전 지점장을 포함한 3명 직원의 국내 가족 계좌로 재입금하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이렇게 국내로 유입된 20억 원 중 5000만 원가량은 한 백화점 상품권 판매업체를 통해 세탁된 뒤 상품권 구매에 쓰인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20억 원의 수수료가 국내로 유입되어 비자금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금감원에 의해 적나라하게 적발된 셈이다.
그렇다면 ‘4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부당대출 액수는 도대체 어떻게 드러난 것일까. 검찰은 이 전 지점장의 주거지와 사무실 2곳을 압수수색하고 함께 일했던 안 전 부지점장도 집중적으로 수사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전 지점장은 2010년 1월부터, 안 전 부지점장은 2007년 6월부터 부당대출에 관여한 정황을 잡아냈다. 검찰이 포착한 부당대출 횟수만 이 전 지점장은 133회, 안 전 부지점장은 140회에 달했다. 이밖에도 이 둘은 79건의 불법대출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전체 불법대출 규모만 약 300억 엔. 두 사람이 함께 근무한 2010년과 2011년의 환율을 따졌을 때 약 ‘4000억 원’이라는 금액이 환산된 것이다.
두 사람이 부당대출에서 가장 애용한 방법은 ‘담보 위조’와 ‘금액 쪼개기’였다. 담보 위조에는 주로 위조 서류가 동원됐다. 대출 심사에 필요한 부동산 감정평가서를 위조해 담보물의 가치를 부풀리거나, 서류를 위조해 동일 부동산을 담보로 중복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주목할 점은 대출을 원하는 업체가 오면 재산상태 등을 심사해 대출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대출금액을 맞추고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것에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대출자로부터 위조된 서류를 받는 경우도 있고, 은행 여신 담당 직원에게 대출금액을 조작해 쓰도록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금액 쪼개기의 경우 명의를 여러 개 나누어 대출금액을 쪼개주는 방식이다. 대출이 일정 금액 이상이면 본사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국민은행 여신 규정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셈이다. 대출자 중 일부는 30~40여 개의 타인 명의를 내세워 수백억 원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 전 지점장 등은 이러한 다수 명의를 갖고 있는 차주들을 ‘VIP 고객’으로 지정한 뒤 대출 내역을 따로 관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제3자 명의의 신설법인을 내세워 대출을 받는 방법들을 오히려 나서서 알려주고 대출을 종용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결국 이 같은 무자비한 부당대출로 국민은행은 부실 채권을 떠안아 2013년 11월 ‘540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직 처리하지 못한 부실 채권이 많아 피해액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금융감독원과 일본금융청에서 도쿄지점에 대해 집중 감사를 벌이고 있다”며 “새로운 부당대출이나 비자금이 드러날 경우 형사처벌 및 불법재산 환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2006년에는 ‘로또 비리 의혹’ 검찰 수사 받아
주목할 점은 이 씨의 과거 경력이다. 2001년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장을 맡은 이 씨는 2006년 로또 비리 의혹 수사를 받아 검찰로부터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복권사업팀장으로서 컨설팅업체에 지나치게 수수료를 많이 준 혐의였다. 결국 대법원 판결에서 이 씨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국민은행과 복권 사업자들은 그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이후 징계가 예상됐던 이 씨는 검찰 수사로 인해 자리에서 내려왔던 도쿄지점장 자리를 또 다시 꿰차 주변을 놀라게 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긴 했지만 도쿄지점장으로 ‘재 발탁’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씨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뭔가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도쿄지점장으로 발탁된 이 씨는 승승장구했다. 특히 어윤대 전 KB 금융지주 회장이 5차례나 도쿄를 방문해 도쿄지점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게 국민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씨는 해박한 지식과 깍듯한 예의로 ‘의전의 달인’이라는 평을 얻으며 은행 고위층의 신임을 얻는 한편, 향후 본부장 승진 대상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본부장 승진 대상 1순위라는 평가가 오히려 이 씨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 씨가 본부장 승진을 위해 제출한 공적조서에서 수상한 점이 포착된 것. 그가 도쿄지점장에 부임한 2010년도의 대출이 전년보다 ‘40%’나 늘었다는 점을 실무직원이 발견한 것이다. 실무직원들은 “대출 금액이 40%나 늘었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라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결국 국민은행은 이러한 이 씨를 향해 자체 감사에 들어갔고 이 씨가 일본 현지 기업에 다른 사람의 명의로 부당대출을 해준 정황이 드러나기에 이른다. 부당대출 정황으로 이 씨는 승진 대상에서 빠지고 2013년 1월부터 대기발령 상태에 있었다.
대기발령 상태에 있었던 이 씨의 부당대출 혐의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야쿠자 자금 유입 의혹으로 인한 일본금융청의 집중 감시, 금감원의 집중 감사 등으로 또다시 불거지게 된다. 이윽고 검찰 수사에서는 ‘4000억 원’의 부당대출 지휘한 이로 지목을 받게 되기에 이른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상품권 5천만원어치 용처는…
이번 수사에서 검찰은 이 씨가 국내에 유입된 비자금 중 5000만 원을 상품권으로 바꿔 로비를 벌인 의혹을 잡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로비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이 씨의 동생이 수수료를 적게 낼 목적으로 상품권을 대량 구입해 쓴 것으로 확인돼 비자금이나 로비 의혹과는 무관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비자금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2011년 이 씨가 기업인 홍 아무개 씨(52)에게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2억 3000만 엔(약 34억 원)을 불법대출 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9000만 원을 받은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난 것. 이후 홍 씨는 지인인 오 아무개 씨(42)를 시켜 1억 6000만 엔(약 22억 원)을 국내로 몰래 들여오도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 씨는 관할 세관장에 신고하지 않고 인천공항을 통해 돈을 밀반입했다. 검찰은 오 씨가 밀반입한 돈 일부가 이 씨와 안 씨에게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향후 비자금의 실체는 오 씨가 밀반입한 돈의 경로를 쫓는 것이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오 씨와 이 씨, 안 씨의 비자금 실체가 밝혀지고 비자금이 정관계 로비자금이나 윗선과 연결됐을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금융감독원과 일본금융청에서 도쿄지점에 대해 집중 감사를 벌이고 있는 만큼 이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전 지점장의 비자금 조성 및 차명재산 보유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해외지점들 ‘불똥 튈라’ 전전긍긍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11개 은행의 해외 영업점은 33개국 148개에 달한다. 최근 들어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더욱 더 해외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은행 도쿄지점 사태 이후 해외지점들은 혹시나 불똥이 튀길까 염려하는 분위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최근 은행 해외지점을 감독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리 체계에 대한 이슈가 확실히 부각된 것 같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도쿄지점 같은 부당대출이 또 다시 재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본점을 위주로 통제가 확실한 국내보다 해외 쪽은 관리 체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감시 의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지점 수에 비해 검사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전수검사나 현미경 검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도쿄지점 사태의 경우에도 일본금융청이 비위 의혹을 적발할 때까지 금감원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측은 ‘은행 본점’과 해당 국가의 금융청에 1차 감독권이 있다고 항변했지만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책임에선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1차적인 감독 책임은 당국에 있기에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상시 모니터링이나 협력 체계는 꾸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해 11월부터 ‘국내은행 해외지점 부당대출’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금감원은 이를 토대로 은행 해외지점에서 지난 수년간 부당대출 사례가 있는지 조사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