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행위는 수출업체 신용은 물론 국가 신뢰도에 상당한 악영향
- ‘물먹인 폐지’ 사건 수사해 온 검찰 증거불충분 이유로 불기소
- 피해 업체 항고장 제출로 사건 새 국면 돌입 ‘독버섯’ 제거할까
사진=재활용지 수출작업 현장
제지업계가 ‘물먹인 폐지’ 논란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수사당국이 이러한 의혹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가수(加水)행위는 폐지에 물을 뿌리거나 물에 적시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가수행위는 이미 수 십년 동안 관행처럼 은밀히 진행돼 왔다. 폐지에 물을 뿌릴 경우 무게가 증가해 그만큼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폐지에 물을 뿌릴 경우 20% 정도 무게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t 기준으로 순수한 폐지는 105만~110만원에서 가격대가 형성되지만 물을 뿌릴 경우 126만~132만원으로 가격이 21만~22만원 올라간다.
중소 고물상들은 경기침체로 지난해 1㎏당 200원 정도였던 폐지 가격이 올해는 1㎏당 110~130원으로 떨어져 물로 무게를 높여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지업계는 폐지에 물을 뿌리면 보관이 어려운 데다 종이 생산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불공정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제지업체와 폐지 수출업체들은 그동안 이러한 가수행위 등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전개해 왔지만 아직도 이런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관계 당국이나 수사기관 또한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미흡하고 직접적인 증거나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행정처벌이나 사법처리를 기피해 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국내 대표적인 재활용지 수출업체인 A 사가 가수행위를 일삼아 온 일부 하청업체를 고소해 수사당국의 수사 추이에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사진=정상적인 재활용 폐지.
A 사는 지난해 초 경북 영천시, 부산시 진구, 여수시, 광양시 등에 소재한 거래처 대표와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A 사는 국내에서 이들 거래처로부터 재활용지를 대량으로 매입해 이를 전량 중국에 수출하는 회사다. 그런데 최근 중국으로 수출된 재활용지가 중국 광동항에서 통관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제품의 수분율이 극히 과다하고 재활용지 사이사이에 이물질이 다수 들어있다는 이유로 통관이 거절되고 세관에 압류를 당하는 중태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A 사는 급히 중국 현지에 임원진을 파견해 확인한 결과 중국으로 수출된 재활용지는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매우 불량한 상태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A 사는 위에서 언급한 납품업체들이 A 사에 재활용지를 납품할때부터 제품 상태가 극도로 나쁜 상태임을 숨기고 A 사가 중국에서 재활용지에 관한한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를 받고 있는 기업임을 이용해 적극적인 사기의 고의를 가지고 A 사에 문제가 많은 제품을 정상적인 제품인 것처럼 속여 제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A 사는 중국 수출이 불가능해질 수 있을 만큼의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회사 신용은 물론 국가 신뢰도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A 사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이 최소 1년간 수출거래손실추정액으로 미화 3877만여 달러(한화 약 41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대구지검과 광주지검순천지청은 각각 관할 경찰서에 사건을 이관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휘했지만 지난해 말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했다.
사진=물에 젖어 쓰레기로 변한 불량 재활용지. 중국 현지 검수사진
그러자 A 사는 지난해 12월 30일 검찰 측의 불기소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다시 항고장을 제출해 이 사건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고소인 A 사는 항고이유서를 통해 “검찰의 불기소처분 이유를 보면 대부분 피고소인이 자의적으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측 되는데, 사전에 고소인에게 피고소인들의 진술 조서들을 열람하게 하거나 확인 시켜주는 절차를 거쳤더라면 피고소인들의 진술이 허위라는 사실을 고소인이 미리 밝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고소인에게 이러한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고 그대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A 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고소인은 해외 바이어에게 손해배상을 해줌으로써 거액의 손해를 입었고, 고소인 회사의 대외 신뢰도가 하락하였으며, 해외 바이어와의 거래가 중단됨으로써 발생한 일실이익 손해 등 추정하기 힘든 거액의 간접적 손해까지 입게 됐다”며 “그럼에도 수사당국은 사기 및 업무상배임죄 성립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피고소인의 계좌 추적 요구도 거절하고 피고소인과의 대질신문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이 사건의 중대성과 충분한 정황 근거에 비해 매우 소극적인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A 사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으로 형사재판 피해자로서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A 사는 “지금이라도 정식 재판을 통해 피고소인들의 혐의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며 “고소인이 이번 사건에 대해 엄중한 법적 판단을 촉구하는 것은 고소인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활용지 산업에서 만연해 있는 수분율 조작행위를 근절하여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A 사는 “피고소인들의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통해 기소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재판을 통해 피고소인들의 행위가 법의 판단을 받고 고소인들이 재판절차진술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과연 A 사의 항고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이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는 가수행위 등 불공정행위를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