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 내연녀와 함께 있던 50대 남성을 살해한 김 씨가 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김씨는 한 도로에서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피해자에게 붙잡혔다. 연합뉴스
그의 끔찍했던 마지막 범행은 지난 14일 광주 서구 양동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벌어졌다. 한적한 도로에 세워진 차량 한 대에는 이불가게를 운영하던 신 아무개 씨(여·53)와 일행인 구두미화원 김 아무개 씨(50)가 동승하고 있었다. 막 저녁식사를 다녀온 두 사람이 차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김 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먼저 찔린 일행 김 씨는 숨지고 말았지만 이후 칼날이 칼자루에서 빠진 덕에 신 씨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신 씨는 과거 김 씨의 내연녀였다. 지난해 12월 절도, 강간, 존속상해 등 수십 건의 전과로 오랜 시간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야 했던 김 씨는 6개월의 감옥살이를 끝내고 출소한 뒤 신 씨를 찾았다. 출소 직후 또 다른 절도혐의로 도피생활을 해야 했던 김 씨에게 은신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이 있었던 신 씨는 김 씨의 부탁을 거절했고 경찰에 주거침입으로 신고까지 했다. 이로 인해 경찰에 붙잡힌 김 씨는 앙심을 품게 됐고 재판과정에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자 분을 참지 못해 직접 신 씨를 찾아갔다. 결과적으로 애꿎은 시민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지만 김 씨는 반성은커녕 “(신 씨가) 살아있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죽이고 자수하겠다”며 오히려 전화로 경찰을 협박을 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전과자인 데다 또 다른 범죄를 예고한 김 씨의 위험성을 인지한 경찰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15일 광주 서부경찰서는 김 씨를 공개수배 할 것을 결정하고 전날 준비한 전단을 전국의 일선 경찰서와 언론에 배포했다. 보통 강력범의 경우 실적을 쌓기 위해 공개수배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이었지만 서부경찰서는 그보다 시민의 안전을 택했다.
김 씨의 공개수배 전단지.
약 2㎞를 달아난 김 씨는 그만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뒤따라 추격하던 차량운전자와 주변 시민들에게 붙잡혔고 결국 파출소에 끌려오는 신세가 됐다. 김 씨는 파출소에서도 “화장실을 보내 달라”며 재차 도주를 시도하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공개수배 상태라는 것이 들통 났다.
당초 파출소는 김 씨를 단순 뺑소니범으로 알고 조사를 하려 했으나 한 시민의 결정적인 제보로 그가 공개수배 상태임을 알게 됐다. 익명의 한 시민이 사고현장을 목격한 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에 나온 김 씨의 공개수배 방송내용을 기억해 이를 알린 것. 이 시민은 공개수배 방송 영상 등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직접 촬영해 파출소를 방문해 보여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광주 서부경찰서 김용관 형사과장은 “추가범죄의 가능성이 있어 무엇보다 조기검거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일선 형사들과 함께 수사회의를 열어 공개수배 결정을 내린 것이 빠른 범인 검거에 기여한 것 같다”며 김 씨를 광주로 압송해 정확한 범행동기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온갖 악행을 일삼다 끝내 살인까지 저지른 김 씨. 그는 경찰에 붙잡혀서도 “내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 가치가 없다”며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