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 의원이 1월 16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안철수 의원과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과 안 의원이 지난해 6월 4일 임시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 뉴시스
하지만 민주당이 ‘빅3’ 못지않게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지역이 또 있다. 바로 호남이다. 이곳은 ‘깃발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민주당 텃밭이라는 점에서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3월 출범할 안철수 신당으로 인해 더 이상 민주당의 무혈입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은 민주당 입장에선 절대 내줄 수 없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호남을 내줄 경우 전통적인 정치적 텃밭을 잃어버려 향후 치러질 총선과 대선 등에서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민주당에게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아직 창당조차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몇몇 지역에선 뒤처지고 있다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그동안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호남을 수도권과 함께 격전지로 분류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으로선 안철수 신당의 거센 공격에 맞서 굳건히 수성을 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안 의원 역시 호남이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해 12월 26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민주당을 겨냥해 “민심과 동떨어진 채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구체제, 구사고, 구행태의 산물”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안 의원이 민주당을 겨냥해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호남이라는 ‘집토끼’를 둘러싼 민주당과 안 의원 측 갈등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점차 고조되고 있다. 두 진영의 지도부급 인사들은 연일 호남을 방문해 세 결집에 나서는 한편, 상대방을 향해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는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쪽이 향후 호남에서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과 무관치 않다. 권대우 정치컨설턴트는 “호남대전에서 이기는 세력은 정치 행보에 탄력을 받을 것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7월 재·보궐 선거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금배지 한 명이 아쉬운 안 의원으로선 지방선거에 ‘올인’ 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야권 연대와 같은 합의점은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양측 모두에게 호남은 양보할 수 없는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안풍’ 차단에 나선 민주당은 호남지역에서 신당의 파괴력이 미미할 것이라며 애써 평가절하하는 기류다. 민주당 의원들은 “호남 지역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 중 대부분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길 꺼려하고 있다. 신당의 미래가 불투명하기도 하지만 제1야당이자 호남의 적자인 민주당과 경쟁한다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 의원의 고민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다. 신당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인 인물 영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호남 지역에서 수적으로는 적지 않은 인사들이 신당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이 중에 안 의원 측이 기대하고 있는 ‘슈퍼스타급’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원 진영 내부에서는 “호남의 유력인사들 몇 명만 신당으로 와준다면 (인재 영입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이 호남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주선 의원(광주 동구)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남 보성 출신에 3선인 박 의원이 가세해준다면 민주당과의 호남 결투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박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안 의원이 문재인 의원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면서 박 의원의 합류 역시 중단됐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안 의원이 지난해 4월 재·보궐을 통해 국회로 들어오면서 이어졌다. 무소속인 안 의원과 박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앞뒤로 나란히 앉아 대면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됐다. 두 의원이 환한 얼굴로 본회의장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카메라에 여러 번 포착되기도 했다.
이처럼 안 의원이 박 의원을 ‘스카우트’하기로 결심한 것은 호남 공략과 인재 영입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사실 안 의원 측 몇몇 참모들은 박 의원이 과거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인해 재판을 받은 경력을 거론하며 ‘새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직접 “모두 무죄를 받은 내용 아니냐. 박 의원이야말로 구태정치의 희생양”이라고 두둔하면서 박 의원 영입을 밀어붙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철수 의원 등 새정치추진위원회 대표단이 1월 1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사실 박 의원은 김한길 대표를 필두로 하는 민주당의 비노 세력으로부터도 여러 차례 입당 요청을 받아왔다. 여기엔 박 의원을 안철수 신당에 빼앗겨선 안 된다는 위기감도 내포돼 있다. 비록 무소속이긴 하지만 박 의원은 호남 지역에서만 3선을 기록한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다. 특히 DJ는 공식석상에서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에 대해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까지 극찬했던 일화는 지금도 정가에서 회자되고 있고 ‘DJ를 이을 호남 대통령감’이란 평가까지 받았던 박 의원이다.
또 세계 사법·정치사상 초유의 사건인 ‘4번 구속, 4번 무죄’라는 정치적 표적수사라는 역정 스토리까지 겸비하고 있다. 적어도 호남에서만큼은 박 의원의 정치적 위상과 파괴력이 그 어떤 민주당 의원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으로선 박 의원이 탐나기도 하거니와 안철수 신당으로 보낼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의원 영입에 성공한 안 의원 측은 ‘박주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신당 합류를 머뭇거리고 있는 호남지역 유력 인사들이 연이어 박 의원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호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 의원이 신당에 합류함으로써 향후 적잖은 거물급 정치인들이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호남권 정가 주변에선 박 의원이 6월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할 것이란 관측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지역구가 광주 동구인 박 의원이 광주시장으로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백의종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내야 하는 안철수 신당이 적극 지원하고 여론이 박 의원 출마를 부추길 경우 박 의원이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어찌됐건 호남에서의 야권 지각변동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실적으로도 박 의원 합류는 그동안 금배지에 목말라 했던 안 의원 진영에 단비가 될 전망이다. 현행법상 최소한 5명 이상의 현역 의원이 있어야 정당으로서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특히 기초단체 공천폐지가 무산될 겨우 지방선거서 후보들이 동일 기호 5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지금 두 명(안철수·송호창)뿐인 신당은 박 의원 외에 두 명만 더 와준다면 보조금을 받을 요건을 갖추게 된다.
안철수 신당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가운데 호남권 정가 지각변동 및 6월 지방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새 변수로 급부상한 ‘안철수-박주선 호남상륙작전’이 언제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