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D 한의원을 개원한 서 씨는 주로 노인들을 진료했다. 주변에 대형 약재시장이 있어 겸사겸사 볼일을 보고 서 씨의 한의원에 들르는 환자들도 많았다. 덕택에 “요즘 한의원은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하는 젊은 한의사들과 달리 혼자서도 월 평균 300만~400만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그리 넓지 않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한의원을 운영했기에 수익은 고스란히 서 씨의 몫이었고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입이었다. 이처럼 병원운영이 잘 되자 서 씨는 꾸준히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는 간호사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서 씨의 한의원이 불법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관할관청에 신고도 하지 않아 엄연히 불법치료를 하는 것이었음에도 버젓이 직원을 고용하고 환자를 받았던 것이다. 이를 몰랐던 환자들은 꾸준히 서 씨의 한의원을 찾았고 직원들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2년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의료적인 실수가 아닌 간호보조원 성추행 사건이었다. 그해 11월 서 씨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A 양(여·19)을 간호보조 업무직으로 채용했다.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에 항상 긴장하며 일을 했던 A 양은 어느 날 서 씨로부터 “침을 놓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저 직원에게 호의를 베푸는 줄만 알았지만 서 씨에겐 검은 속셈이 있었다.
일단 서 씨는 “간이 좋지 않다”며 A 양을 침대에 눕혔다. 돈을 내고 치료를 하는 것도 아닌 데다 서 씨는 자신의 고용주였기에 A 양은 별다른 반항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서 씨의 치료법은 어딘가 이상했다. 일단 신체 일부에 침을 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A 양의 온몸을 더듬었다. 심지어 상의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거나 강제로 키스를 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A 양이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자 서 씨는 “뽀뽀를 해 달라”며 강요를 하기도 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A 양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서 씨의 범행은 대범해져갔다. 하루는 A 양의 자궁을 치료하겠다며 발에 침을 놓아 꼼짝 못하게 한 뒤 팬티를 내려 성추행까지 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A 양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여직원 B 씨(여·22)도 희생양이 됐는데 서 씨는 일명 ‘마비 침’이라 불리는 침을 놓아 B 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온몸을 더듬는 등 지난해 5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이 같은 서 씨의 범행은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한 여직원들의 신고로 막을 내렸으나 그의 뻔뻔함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서 씨는 “치료목적으로 침을 놓기 위해 신체 접촉을 했을 뿐 고의는 없었다”며 “피해자들이 먼저 나에게 와서 키스를 하거나 팬티를 벗으며 자궁을 봐달라고 했다”고 오리발을 내민 것. 또한 서 씨는 여직원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서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신명희 판사는 “피해자들이 서 씨를 모함하기 위해 위증이나 무고의 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만한 사정이 없어 보이고 그들의 진술도 일관되고 구체적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서 씨에게 성욕을 자극, 흥분, 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없었다고 해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고의가 넉넉히 인정된다”며 서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더불어 보호관찰과 40시간의 성범죄예방강의 수강도 명령받았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키스를 했다’는 서 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회경험이 없는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인 피해자들이 틀니를 끼고 80세가 넘은 서 씨에게 먼저 다가가 키스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피로 쌓여 갔더니 “손가락 빨아봐”
문제는 제대로 된 설명은 물론이고 환자의 동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신체접촉 진료’를 하는 일부 한의사들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직장인 박 아무개 씨(여·27)도 3년 전 불쾌했던 기억으로 인해 한의원 방문을 꺼리고 있다. 박 씨는 “허리 통증으로 유명 한방병원을 찾아 남자 교수 한 분에게 치료를 받았다. 허리에 봉침(벌침)을 맞았는데 갑자기 내게 가슴에 화가 쌓여있다며 불쑥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게 아닌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워하자 그 교수는 ‘아무한테나 이런 치료 안 해준다. 영광으로 생각하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나와 따질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비단 박 씨만이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평소 자주 피로감을 느껴 한약을 지어먹을 생각에 동네 유명한 한의원을 찾았던 김 아무개 씨(여·29)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김 씨는 “머리가 희끗한 남자 한의사였는데 이유 없이 피로감을 느낀다고 하자 일단 눕혀서 침을 놓고 여기저기 만져보더라. 그런데 갑자기 비닐장갑을 끼더니 내 입안에 손가락을 넣고 입천장과 뺨 양쪽을 꾹꾹 눌렀다. 그러더니 나보고 자신의 손가락을 빨라고 하더라”며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자 계속 빨라고 보채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뗐더니 그제야 손가락을 뺐다. 무슨 치료법이나 따져 물었더니 간단한 테스트라며 서둘러 날 내보냈다. 치료의 일환이라고 하니 따질 수 없었지만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