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상고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인 이 전 회장의 반응은 8일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항암 치료 중이다. 2012년 말 폐암으로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최근 신장 부신에 전이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약하나마 화해의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화해 제의가 오면 양측이 만나서 방법 등을 모색할 수 있다”면서 “재판부 판결을 존중해 상고를 하지 않는 게 순리”라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맹희 전 회장은 지난 7일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삼성이 제안한 화해를 위해 빠른 시일 내 구체적인 대화창구나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CJ그룹 고위 관계자도 “우리로서는 양측이 화해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상고의 뜻이 있다면 적극 만류할 생각”이라고 했다.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아들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생각해서라도 화해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재현 회장은 14일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큰 상처를 입은 만큼 이를 깨끗하게 털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그는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 ‘해원상생’ 편지를 공개하며 이 회장 측에 화해를 제의했으나, 일언지하에 거부당해 결국 공식 패배에 이른 치명상을 안게 됐다. 이 전 회장이 다시 와신상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 대리인인 차동언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CJ그룹 내부에서도 이 전 회장의 상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의견이 없지 않다. 한 관계자는 “이맹희 전 회장이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다만, 상고를 하더라도 충분히 숙고를 한 후 2주간의 기한을 다 채우고 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현실적인 문제는 소송비용이다. 인지대는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내는 수수료로 소송가액에 따라 달라진다. 1억 원짜리 소송에서는 보통 45만 원 안팎이지만 심급이 올라갈수록 늘어난다. 1심에서 패소한 원고 이맹희 전 회장과 여동생 이숙희 씨 등은 이미 127억 원(이 전 회장 배정액 90억 원)의 인지대를 냈다. 단독으로 항소심을 제기한 이 전 회장은 소송가액을 9400억 원으로 낮추고 44억 원의 인지대를 추가로 냈다. 지금까지 134억 원을 쓴 셈이다.
대법원에 상고하게 되면 인지대는 1심의 2배가 되는데, 소송가액이 관건이다. 이와 별도로 이 회장 측이 지불한 소송비용과 변호사 비용(법정상한선 약 200억 원)도 대신 물어내야 한다. 이 돈까지 이 전 회장이 부담할 경우 최대 340억 원에 가깝게 된다. 법조계에서 이 전 회장이 상고를 감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재현 회장이 지난달 서초동 중앙지법 결심 공판 법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다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월 14일 이재현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성 아무개 CJ제일제당 부사장(전 재무팀장)은 삼성 측이 이 아무개 전 CJ그룹 재무팀장에게 회사에 대한 불리한 자료를 넘기는 대가로 80억 원을 제안했다고 증언해 파장을 낳았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측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했고, CJ 측도 “검찰 신문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사전 계획된 게 아니다”고 해명해 의혹이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검찰의 관심이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과 그 용처에 있고, 그 일부가 재산소송과 관련한 지출이 있었는지, 삼성-CJ 간 부정한 자금거래가 있었는지에 있음을 보여준다.
양측의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맹희-이재현 부자간의 자금거래뿐만 아니라 삼성-CJ 간의 불편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사실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면서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이 전 회장이 일단 상고까지 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