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 측이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내부 비밀 자료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형제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지난 1월 16일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김기영)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배임으로 제기된 100억여 원 중 34억 원만 유죄로 인정했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박찬구 회장은 다시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이렇듯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5년을 넘게 끌어오던 ‘형제의 난’을 매듭짓고 각자 사업에 전념할 것으로 보였지만, 아직 두 회장 앞에 놓인 장애물은 적지 않아 보인다.
먼저 지난 1월 28일 경제개혁연대와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들이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등 전·현직 이사 9명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들은 “박삼구·박찬구 회장 및 전·현직 이사들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부실이 우려되는 금호산업 기업어음(CP)을 매입하고, 회사가 유류할증료 담합조사를 받을 때 감독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 아시아나항공에 247억 60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금호아시아나 측은 “당시 회사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판단이었다”며 “금호산업 CP 매입은 회사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고, 신규자금 투입이 아니었다. 게다가 워크아웃 결정 이후의 CP는 워크아웃을 진행하기 위해 만기연장이 불가피하므로 채권단의 요청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너 일가 두 형제가 직접 피소됐기에 앞으로 소송 과정에서 원고-피고 간, 형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와는 별개로 봉합될 듯하던 두 형제간 갈등에도 다시 ‘소금’이 뿌려졌다. 지난 3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신들의 보안용역직원 오 아무개 씨(38)와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금호석유화학 부장)인 김 아무개 씨(60)에 대해 방실 침입과 배임수·증재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회장 비서실 자료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을 확인하고 자체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룹 회장실 보안용역직원인 오 씨가 운전기사 김 씨의 사주를 받아 비서실 자료를 몰래 빼냈고, 불법적으로 유출된 자료들이 누군가에 의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공격하는 데 활용된 것으로 보고, 김 씨와 오 씨를 종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오 씨의 자술서에 따르면 김 씨에게 포섭당한 그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80여 차례에 걸쳐 박삼구 회장 비서실에 잠입, 박삼구 회장의 개인일정 등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문서를 사진 촬영하여 김 씨에게 전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오 씨는 김 씨에게 수십 차례에 걸쳐 향응을 제공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10년 넘게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로 일해 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보안용역직원인 오 아무개 씨가 비서실에 잠입한 장면.
고소장을 접수 받고 수사에 착수한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5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관리팀장 등을 소환해 진술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제 수사를 시작하는 단계라 피고소인 조사와 관련해서는 정확한 일정이 나온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소를 두고 재계에서는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평소 금호석유화학과 얽혀 문제를 만드는 것을 꺼려왔다. 그런데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먼저 고소장을 제출하며 언론에 알렸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의 문서가 유출됐는지 알 수 없어 이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오 씨는 유출한 문서가 박삼구 회장의 개인일정 정도라고 밝혔지만, 대외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향후 이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또한 재계에서는 오는 3월 열리는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찬구 회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1%를 가진 2대 주주지만 상호출자에 따른 의결권 제한을 근거로 1대주주인 금호산업의 의결권 제한을 주장할 수 있다. 만약 금호석유화학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1대주주로 오르게 된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이 이번 고소에 대해 앙심을 품고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 실력을 행사한다면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도 경영정상화에 차질이 생겨 좋을 것이 없다”며 “두 그룹이 또 다시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면, 이제 두 박 회장 간의 회해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