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위해 구급차를 타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윤성 기자
대형 로펌들이 대기업 회장들의 송사에서 받는 수임료는 형사와 민사, 소송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한 중형 로펌 변호사는 “수임료는 사건마다 난이도와 복잡성에 따라 천양지차로 다양하지만 민사소송의 경우 보통 소송가액의 1~3%가 적정 수임료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형사소송의 경우, 무죄나 감형, 불구속 등의 정도에 따라 선임료(착수금) 외에 받는 성공보수의 비중이 더 커서 그 내막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0대 로펌 파트너급 변호사도 “재벌 총수 관련 형사소송 수임료는 재판의 난이도와 심급에 비례해 올라간다”면서 “보통 착수금은 5억~10억 원, 무죄나 집행유예 등에 따른 성공보수는 20억~30억 원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구속기소돼 3심까지 거치고 풀려날 경우 성공보수까지 감안하면 수임료는 100억 원대에 이르는 셈이다. 이 변호사는 “대형 M&A(인수·합병)를 성사시킨다고 해도 수임료는 3억~5억 원이니 재벌 총수 형사사건은 로펌에 있어서 최고의 비즈니스”라고 덧붙였다.
로펌에게 있어서 대기업 회장들의 형사소송은 ‘결과’가 최우선이다. 앞서 변호사의 설명처럼 착수금보다 성공보수가 2~3배 많다. 반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자칫 잘못될 경우 로펌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으며 주요 고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의뢰인의 형량에 따라 얼마든지 웃돈이 오갈 수도,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재현 CJ 회장이 지난 14일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모습. 박은숙 기자
김 회장은 지난 2012년 수천억 원의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 때는 민병훈 변호사 등 개인 변호사들에게 맡겼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김 회장이 충격을 받았고, 곧바로 2심에선 태평양을 선임해 징역 3년으로 1년 감형받았다. 하지만 김 회장의 구속상태가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회장은 3심에서 화우와 율촌을 선임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이어진 이번 파기환송심에선 율촌을 내세웠다. 매번 로펌이 달라진 것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아마 법무팀도 율촌에 준 수임료를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라며 “김 회장이 풀려난 것은 로펌이 내세운 논리를 재판부가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부당지원과 관련해 1597억 원을 법원에 공탁해 피해액이 모두 회복됐기 때문이어서 율촌의 실제 수임료는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 과정에서 회사 돈 465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 역시 1심에선 김앤장에 맡겼다가 법정구속되자 곧바로 2심에선 태평양으로 갈아탔다. 실형을 선고받을 때마다 변호인단을 교체한 것이다. 3심은 지평에 맡겼다.
최태원 SK 회장.
2000억 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1심 때부터 김앤장에 변호를 맡겼다. 구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으나 지난 11일 항소심에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앤장으로선 간신히 체면을 세운 것이다.
대기업 회장들은 여러 로펌을 한꺼번에 선임하기도, 크지 않은 사건을 대형 로펌에 맡기기도 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김앤장과 광장을 변호인단으로 선임, 지난 14일 징역 4년과 벌금 260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악화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중이라 법정구속은 면했다. 1200억 원대 법인세 탈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김앤장과 대륙아주에 맡겼다. 1조 3000억 원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대륙아주와 바른을 선임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12년 10~11월 국회 국정감사 등에 불출석한 혐의로 지난해 재판을 받았다. 정용진 부회장은 태평양, 신동빈 회장은 광장, 정지선 회장은 김앤장을 선임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들은 대기업 회장들에 대한 반감이 컸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벌금 300만 원 정도였던 예전과 달리 모두 벌금 1000만~1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경우 앞서 설명한 형사소송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소송가액에 따라 승소할 경우 성공보수는 더 많을 수 있다. 삼성가 상속소송에서 이맹희 전 회장은 화우를 대리인으로, 이 회장은 태평양을 앞세웠다. 화우 관계자도 1심 당시 수임료를 둘러싼 소문이 나돌자 “일각에서는 1000억 원대 수임료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된다. 소송 청구가액이 크면 그만큼 수임료 비율도 줄어든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도 패배함에 따라 소송 인지대 127억 원뿐만 아니라, 이 회장의 1, 2심의 법정비용까지 물어줘야 할 처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판에서 진 경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수임료도 재산정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맹희 전 회장이 항소심까지 오는 과정에서 물어야할 소송비용은 400억~5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형 로펌은 지난해부터 통상임금 소송이 늘어나자 전담팀을 꾸려 일종의 수주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안다”면서 “대기업 회장들의 재판뿐만 아니라, 통상임금 소송, 과징금 소송에다 최근 구조조정 등으로 늘어난 인수합병 증가 등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웅채 언론인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