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월세 시장의 팽창으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대학가에 원룸을 얻어 살고 있는 20대 직장인 K 씨의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에 살던 K 씨는 집주인이 연초 들어 월세를 70만 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보증금을 3000만 원으로 2000만 원 더 올리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집주인은 다른 원룸은 월세가 더 비싸다며 거부했다.
K 씨가 추가 보증금 2000만 원 대신 10만 원의 월세를 더 낸다면 전·월세전환율은 6%(월 0.5%)가 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2000만 원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예금금리 연 3%대 초반으로 가정) 월 5만 원보다 임대료 10만 원 올리는 게 훨씬 이익이다. 사실 대학가에서는 보증금 1000만 원을 월세 10만 원 정도로 환산하기에 K 씨는 집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수익을 기대할 만한 상품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전세보증금이 필요치 않은 집주인들의 월세선호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가 조사·발표한 지난해 주택거래 통계에 따르면 전·월세 거래량은 137만 3172건으로 전년(132만 3827건)보다 3.7% 증가했다. 이 중 월세는 54만 388건으로 전년(45만 122건)보다 20%나 증가했지만 전세는 83만 2784건으로 전년(87만 3705건)에 비해 4.7% 줄어들었다. 월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세입자나 집주인, 임대차시장 전반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우선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월셋집은 넘쳐 나는 반면 전셋집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 강남권의 경우 전세 물건이 나오기가 무섭게 계약이 성사되고 있어 전셋값이 1주일 단위로 몇 천만 원씩 상승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에서는 지난 10일 기준 전국 전셋값이 77주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년간 전세가격은 5.11% 올라 매매가격 상승률 0.80%를 큰 폭으로 웃돌았다. 연초 들어서도 전셋값 상승세는 꺾일 줄 모르고 무섭게 치솟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간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0.59%였다. 서울은 한 달간 0.81%나 상승했다.
대학가에서는 보증금 1000만 원을 월세 10만 원 정도로 환산한다.
임대전문 정보업체 ‘렌트라이프’가 국토교통부의 전월세 실거래가 자료를 토대로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를 전세로 환산해 본 결과 지난해 4분기 서울 아파트 환산전세가는 2억 815만 원으로 1분기 1억 7838만 원에 비해 2976만 원이나 비쌌다. 이는 월세 가격이 사실상 올랐다는 얘기다.
김혜현 렌트라이프 대표는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한 이율은 떨어지지만, 월 임대료만을 비교하면 전셋값 상승과 맞물려 오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특히 보증금이 적은 소형 주택일수록 월세 부담은 더 크다. 서울시가 지난해 4분기(10~12월) 실거래가 자료를 토대로 분석·발표한 전·월세전환율은 7.6%로 3분기 대비 0.2%포인트(p) 떨어졌지만 원룸이 많은 보증금 1억 원 이하 다가구는 8.3%에서 8.6%로 0.3%p 높아졌다. 1억 원 이하 전체 주택의 경우도 전환율은 8%대로 나머지 보증금액 구간이 모두 6%인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큰 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월세로 전환된 전세계약의 보증금액이 적을수록 전환율 수준이 높아 소액보증금에 살고 있는 서민일수록 월세 부담이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월세 부담 증가로 ‘월세 푸어(Poor)’가 증가하고 있다. 전세의 경우 저금리(3~4%)로 대출 부담이 크지 않지만 월세는 전환율이 6~7%에 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전·월세전환율(7.6%)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2억 원을 대출받아 전세로 살 때는 한 달에 이자를 67만 원 정도 부담하면 됐지만 이를 월세로 전환하면 126만 원으로 한 달 주거비가 약 59만 원 늘어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 201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소득에서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RIR)이 수도권은 평균 30.5%, 전국은 26.4%에 달한다. 그마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세여서 이를 순수 월세로 환산할 경우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급격한 월세 시장 팽창은 주거비 부담 증가로 월세 푸어를 양산할 수 있다”며 “전세의 월세전환이 천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