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에는 제3자에 의해 영상이 촬영되는 것보다 오히려 당사자들이 직접 찍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연인관계인 두 사람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성관계 장면이나 나체인 모습을 찍는 것인데 서로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한쪽이 상대에게 촬영 사실을 숨기고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문제는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다. 서로가 은밀한 동영상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원본을 삭제하는 등의 깔끔한 정리가 가능하지만 만약 어느 한 쪽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심각한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여성이 영상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땐 협박용으로 이용되거나 자신도 모르게 유포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해여성들은 자신의 동영상이 있었는지조차도 몰랐기에 유포가 되고서야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데 그땐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의 발달로 한 번 유출된 영상은 순식간에 퍼질 뿐만 아니라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삭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여성들은 오히려 경찰 신고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분을 밝혀야 되는데 완전히 영상이 지워지지도 않는데 이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피해상담 26건 가운데 고소가 진행 중인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이처럼 법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지만 개인이 감당해야 할 피해규모는 엄청나다. 대부분의 동영상은 여성의 이름이나 주거지 등과 함께 공개되기 마련인데 이를 단서로 자세한 신상이 공개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 새로운 영상이 유출되면 이를 다운받은 사람들이 ‘신상털기’에 돌입해 이름, 직장, 나이, 주소 등까지 댓글로 공유된다. 이 과정에서 간혹 동영상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당사자로 지목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동영상 유출이 발단이 돼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일반인 동영상 유출에 관한 사례를 취재하던 도중 세간엔 알려지지 않은 비극적인 사건을 접할 수 있었는데 사건의 시작은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A 씨(여)는 늘씬한 몸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병원 내부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실력과 미모를 겸비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VIP 병동의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파일공유 사이트에 ‘일반인’ 검색 결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그들에게 동영상의 존재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의 추억으로 남길 뿐 유출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무렵 두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동영상은 시한폭탄이 돼버렸다. A 씨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은 B 씨는 어떻게든 관계를 되돌려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굳게 닫힌 A 씨의 마음은 온갖 노력에도 다시 열리지 않았고 그때마다 B 씨의 가슴엔 상처만 남았다.
그렇게 몇 번의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낀 B 씨는 순간적인 복수심에 휩싸여 동영상을 유출시키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A 씨가 근무하는 병원 내부 사이트에 말이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된 사이트였지만 동영상이 퍼지는 속도는 엄청났다. 순식간에 해당 병원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음란 사이트에도 두 사람의 동영상이 등장했다. 뒤늦게 B 씨는 동영상을 삭제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결국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
B 씨는 동영상을 올릴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벌인 일로 경찰 조사를 받고 A 씨도 병원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일상적인 생활도 못할 정도로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단다. 그러다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이겨내지 못한 B 씨는 A 씨에 미안함을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A 씨와 함께 근무했던 한 동료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병원에서 쉬쉬하는 분위기다. B 씨가 자살했다는 사실도 일부 의사들만 알고 있을 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임에도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해당 동영상이 나돌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동영상 파일에 버젓이 병원이름이 적혀있어 혹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간호사들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실제 B 씨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찾아보니 지금도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파일 제목에는 해당 병원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여성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이처럼 일반인 동영상 유출에 대한 피해는 심각해지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일반인 동영상 유포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강압적으로 영상 유포를 금지하기보다는 이를 보는 사람들이 피해자에 대해 공감하고 스스로 ‘나는 절대 보지도 않고 유포하지도 않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휴대폰 분실 여고생 ‘내 나체 동영상ㅠㅠ’
유명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거의 매일 ‘일반인’이라는 제목을 단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음을 전해 듣는 황당한 경우도 발생한다.
A 씨처럼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영상이 유포되는 것일까. 일반인 동영상이 유포되는 경로는 다양한데 우선 휴대전화나 카메라, 컴퓨터의 분실이나 해킹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동영상이 담긴 전자기기를 분실해 자신과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타인의 손에 넘기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한 여고생이 자신의 나체 목욕 동영상이 저장된 휴대전화를 분실해 중고딜러로부터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며 또 다른 음란 영상을 보내라는 협박에 시달리다 경찰에 신고한 사례가 있었다. 또한 동영상이 담긴 전자기기를 수리하거나 중고업자에게 팔아넘겨 유출되기도 한다.
수익을 위해 상습적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인 동영상은 상업적인 포르노물보다 인기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를 노리고 파일공유 사이트에 올리거나 업자에게 팔기 위해 찍는 것이다. 여자친구에서부터 나이트나 클럽에서 만난 하룻밤 상대, 성매매 여성까지 상대도 다양하게 찍는다.
때론 상대에게 동의를 얻고 얼굴을 모자이크한 뒤 직접 영상을 올리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다. 대부분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거나 애인을 자랑하기 위해 특정 음란 사이트나 카페에 올린다. 하지만 이 경우 상대가 동영상 촬영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동의 없이 이를 유포하는 것은 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명백한 범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간혹 자신이 직접 찍긴 했으나 실수로 영상이 유포되기도 한다. 지난해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한 여고생은 남자친구에게 전송하기 위해 자신의 나체 동영상을 촬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게만 보내려 했던 영상을 실수로 지인들에게 보냈고 결국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고 말았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