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법은 시작부터 수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20일 목요일 오후 1시,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의 한 대학을 찾았다. 방학임에도 졸업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여대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여대생에게 성에 대해 물어봤다간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방향을 틀었다. 학생들이 편히 대화를 나누거나 스터디를 할 수 있는 건물로 들어간 기자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드디어 설문을 시작했다.
“저기, 여러분의 성생활이 궁금해서요.”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아무리 설문의 취지를 잘 설명하고 친근히 다가가도 여대생들의 자기방어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다수는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바쁘다고 자리를 뜨거나 정중히 거절당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한 여대생은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당차게 따지고 들어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여론조사도 답변자가 불쾌감을 느낄 정도의 질문은 되도록 자제하고 질문내용을 조정하는 게 관례인데 기자의 정공법은 누가 봐도 무리인 것이 사실이었다.
이후 몇 테이블을 더 돌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기자는 학생회와 동아리를 활용하기로 했다. 방학이라도 젊은 대학생의 열정이 살아있는 그곳. 기사 취지만 잘 설명한다면 수월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대가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것이었는지 모른 채 그렇게 학생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는 차근차근 동아리방을 하나씩 방문해 설문을 요청했다.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일부는 설문지를 작성해 문 밑에 놓아두겠다고 약속을 해줬다. 기자도 ‘설문지는 바로 봉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 번의 시도가 성공한 뒤 기자의 발걸음도 더욱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바로 기독교 동아리방까지 들어간 것. 하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그 동아리 회원들은 달콤한 말로 일단 기자를 돌려보낸 뒤, 곧바로 경비실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학생들의 신고를 받은 수위 아저씨는 남은 동아리방을 돌던 기자와 마주쳤다. 기자는 설문 취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그 어떤 불미스러운 의도도 없음을 밝힌 뒤에야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정공법은 실패했다.
인맥을 통한 설문도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사례를 충분히 하겠다고 말해도 겨우 몇 명 정도의 친구들만 설문을 약속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포기를 선언하려던 찰나, 드디어 돌파구 하나를 발견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 양식을 활용하면 보다 쉽게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이 방법을 사용하면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 서로가 껄끄럽지 않고 일일이 종이를 수거하거나 정리할 필요도 없었다. 번거로움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신뢰성에도 문제가 없었다. 기자가 이미 연락처를 알고 있는 특정 사람들에게 미리 연락해 설문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설문지를 발송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물론 누가 답변지를 보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여대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했다(사실 이 방법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종의 ‘웹 서베이’ 방식으로 진행해보니 답변자의 비밀도 보장해주고 수거방법도 간편해 효과가 있었다.
이번 설문조사는 말 그대로 무한도전이었다. 답변자들이 지나친 거부감을 보일 경우 신고를 당할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였지만, 여대생들의 성의식을 한번 들어보자는 애초의 기획취지에는 어느 정도 부합된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무한도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101명의 여대생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혁주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