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릴레이 게임 ‘넥노미네이션’에 도전한 한 남성이 화장실 변기에 맥주를 부은 뒤 물구나무를 서서 마시고 있다. 사진출처=유튜브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 동영상 속 주인공은 잉키 랄프(21)라는 여성이었다. 심지어 누리꾼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고 있는 랄프가 이런 괴상한 행동을 한 것은 다름아닌 ‘넥노미네이션’ 게임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었다. 모두들 재미있어했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영국 레스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 젊은 여성이 버버리 코트를 입고 ‘아스마’ 대형 마트 안으로 들어오더니 갑자기 코트를 벗어 던졌다. 이어 란제리와 스타킹 차림으로 맥주 한 캔을 다 마신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다음 도전자 세 명을 호명했다. 레베카 더글리(19)라는 이 여성의 행동 역시 일종의 ‘넥노미네이션’ 게임이었다. 충분히 눈살을 찌푸릴 만한 일이지만 사실 이 정도는 그나마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이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과격한 도전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가령 털도 뽑지 않은 닭의 머리를 물어뜯은 후 보드카에 달걀 세 개를 풀어서 마시는 끔찍한 행동을 보여준 남성도 있었다. 그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백질 파우더를 한 숟가락 퍼먹은 다음 피고 있던 담배를 혓바닥에 눌러 끄더니 담배꽁초를 보드카에 넣고는 원샷을 했던 것. 이 남성이 구역질을 참아가면서 카메라를 향해 던진 마지막 말 한마디는 “너를 지목한다, 친구”였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술에 넣어 마시는 괴기스런 행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비넥타이에 끈팬티만 입은 한 남성은 사과주스에 소변을 본 다음 자동차 엔진오일과 날달걀을 섞은 후 어항에서 꺼낸 금붕어 세 마리를 폭탄주 속에 넣고는 보란 듯이 들이마셨다. 또 그런가 하면 금발의 한 여성은 비키니 차림으로 폭탄주에 금붕어를 넣어 마시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대형마트에 말을 타고 들어간 잉키 랄프. 그녀는 콜라를 원샷한 다음 카메라를 향해 다음 도전자를 지목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엽기적이다 못해 소름 끼치는 이런 게임은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직업을 막론하고 20~40대 어른들 사이에서도 무모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 남성 사업가는 새의 머리를 자르거나 살아있는 금붕어를 폭탄주에 넣어 마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는가 하면, 수련의 과정의 한 레지던트는 텀블러에 가득 담긴 술을 원샷한 다음 단백질 셰이크에 달걀을 풀어서 마신 후 하키 스틱에 맥주를 부어 마시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직업상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 게임을 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동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전 내용이 점점 과격해지고 무모해지면서 곧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시할 목적으로 세제나 화학약품을 섞어 마시거나 대량의 폭탄주를 연거푸 마시다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희생자는 아일랜드 칼로의 조니 번(19)이라는 이름의 학생이었다. 지난 2월 초 폭탄주를 마신 후 강으로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던 번은 친구로부터 ‘넥노미네이션’ 지명을 받은 후 무리한 도전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더블린에서 두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클럽에서 DJ로 일하고 있던 로스 커민스(22)라는 남성이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 그 역시 ‘넥노미네이션’ 게임을 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얼마 후 영국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모범생이었던 아이삭 리처드슨(20)이 폭탄주 1.5리터를 마신 직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마신 폭탄주는 와인 한 병에 위스키와 보드카, 그리고 맥주를 섞은 것이었다. 친구인 다니엘 리는 “리처드슨은 다른 친구들은 리스테린(구강청결제)과 치약을 섞어서 마셨지만 자신은 여러 가지 술을 섞어서 도전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이겨보고 싶어 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영국 카디프에 거주하는 스티븐 브룩스(29)도 ‘넥노미네이션’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보드카 1리터를 마신 후 기절했던 그는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목숨을 잃은 노팅엄의 브래들리 임스(20)는 진 1리터에 티백을 섞어 마셨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동영상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하지만 다들 별로였다. 내가 술을 어떻게 마시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도전을 마친 후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그는 결국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린 지 4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넥노미네이션’의 광풍은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덮쳤다. 영국의 <미러>에 따르면, 웨스트요크셔주 콜더데일에서는 한 10세 초등학생이 보드카에 핫소스와 마요네즈를 섞어 마셨다가 몸져눕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데도 불구하고 폭탄주 게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만일 도전을 거부할 경우에는 인터넷에서 ‘겁쟁이’라며 집단 조롱을 당하게 되고, 이런 조롱은 나이가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더 견디기 힘든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때문에 억지로 게임에 참가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 조니 번의 형인 패트릭은 “폭탄주 게임은 집단 괴롭힘 형태로 변질됐다. 도전을 거부했던 한 소년이 ‘치킨(겁쟁이)’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걸 봤다”며 비난했는가 하면, 아일랜드 학생협회 회장인 조 오코너는 “집단으로부터 받는 압박은 어마어마하다. 참여 거부는 사이버 폭력과 모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넥노미네이션’이 확대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가능한 최대한 엽기적인 방법을 시도해서 성공할 경우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영웅 심리’ 또한 게임의 확대를 부추기고 있는 요인이다. 이제는 술만 섞은 폭탄주는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각종 약물, 세제, 오줌, 비아그라, 엔진오일 등 다양한 물질을 섞어서 마셔야 그나마 튈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석유와 술을 섞은 폭탄주를 마시는 남성과 대형 마트에서 란제리 차림으로 맥주를 원샷하는 레베카 더글리.
또한 아일랜드 공공보건기관(PHA)은 “진정한 친구는 ‘넥노미네이션’을 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 게임에 맞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청소년들의 용기를 북돋고 있다.
이런 추방 운동에 시민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1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누르면서 열광했던 아일랜드의 ‘넥노미네이션’ 페이스북 페이지는 조니 번이 사망한 후 ‘넥노미네이션’ 동영상을 모두 삭제한 채 현재 음주 위험을 알리는 경고 페이지로 바뀐 상태다.
‘폭탄주 릴레이’ 대신 ‘선행 릴레이’로 바꾸어서 도전을 받아들여 화제가 된 경우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브렌트 린드퀴는 페이스북을 통해 도전을 받은 후 큰 결심을 했다. 폭탄주를 마시는 대신 선행을 베풀기로 마음먹은 것.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남성에게 샌드위치, 초콜릿바, 음료수를 건넸던 그는 “‘넥노미네이션’의 긍정적인 면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선행이 담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25만 번 이상 조회되면서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고, 그의 용기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본받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클럽 DJ 겸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인 애슐리 애버네티는 페이스북을 통해 도전을 받았지만 결국 폭탄주 대신 커피를 선택했다. 머그잔에 커피를 따른 그는 “나는 지금 커피를 마신 다음 일하러 나갈 것이다. 건배”라고 말한 후 커피를 원샷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유행과 이슈가 바뀌는 SNS의 특성상 ‘넥노미네이션’ 광풍 또한 머지않아 잠잠해질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또한 반복되는 패턴으로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비극의 사슬을 끊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관심’에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결국 ‘관심 받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테니 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