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스럽게 손상된 송유관은 사고 당시 상황을 그대로 말해준다.
여수해경이 발표한 유출량은 사고 당시 GS칼텍스가 발표한 800ℓ보다 900배가량 많다. GS칼텍스는 이후 유출량을 2㎘로 정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마저도 여수해경 수사 결과보다 377배 축소한 양이다. 수백 배 차이가 날 만큼 GS칼텍스는 기름 유출량을 축소했다.
여수해경 역시 1차 수사 때와 2차 수사 때 기름 유출량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GS칼텍스 관계자들의 허위 진술과 서류 조작 등으로 유출량 산출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유관 밸브를 잠근 시간도 GS칼텍스 측이 발표한 시간보다 15분 늦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직후 GS칼텍스는 선박의 ‘과속운항’ 탓이라며 사고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억울해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GS칼텍스 쪽 해무사가 부두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감독해야 하는 해무사가 없었으니 과속운항을 막을 수 없었던 데다 송유관 파괴와 기름 유출 사고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GS칼텍스의 거짓말만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여수해경은 기름 유출 사고와 이에 대한 허위진술서류조작 등과 관련 있는 GS칼텍스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양환경관리법 위반, 업무상과실선박파괴, 업무상과실치상, 증거 인멸 등의 혐의다.
GS그룹 빌딩. 이종현 기자
더욱이 GS칼텍스의 사고 축소은폐 사실은 허진수 부회장이 방제와 피해지역 주민들 보상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다짐한 직후 밝혀진 터라 그 진정성과 보상 규모가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허 부회장은 지난 2월 25일 “피해를 본 주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며 방제와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방제활동을 펼친 주민 인건비 20억 원 지급, 피해지역 수산물 7억 원 상당 구매 등 지원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사흘 뒤 여수해경 발표로 GS칼텍스의 축소은폐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허 부회장과 GS칼텍스의 지원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사고 수습과 주민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고를 축소은폐해 오히려 지원 금액을 낮추고 들통 나기 전에 일을 재빨리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GS칼텍스 서울 본사 관계자는 방제와 피해지역 주민 지원보상과 관련, “지난번 발표대로 잘 하고 있으며 지원 규모 등에 대해 추가로 변화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허진수 부회장, 허창수 회장.
한편 이번 사태로 허창수 그룹 회장도 내상을 입게 됐다. GS그룹이 아무리 지주회사 체제를 기반으로 한 계열사 자율책임 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룹 회장으로서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허 회장은 평소 철저한 사고 대비와 도덕경영을 강조해온 터다. 허 회장이 강조해온 이 두 가지가 여수 기름 유출 사고에서 모두 무너진 것.
다른 계열사와 달리 GS칼텍스는 GS의 다른 계열사보다 그룹 지주회사인 (주)GS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허창수 회장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GS칼텍스는 (주)GS의 자회사로서 GS칼텍스의 실적은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주)GS에 그대로 반영된다. (주)GS 관계자가 스스로 “지난해 (주)GS의 실적 악화에는 GS칼텍스의 저조한 실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정도다.
(주)GS 관계자는 “원만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해경의 발표만 믿고 축소은폐조작 운운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밝혔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