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
검찰에 따르면 청주지역의 폭력배들이 본격적으로 조직화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쯤이다. 이 무렵은 이씨가 청주시내에서 도축업과 정육업을 하던 때였다. 당시 청주의 여러 조직폭력배 가운데서도 가장 큰 세력은 야망파였다. 대다수 이 지역 폭력배들은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군소 패거리로 명멸을 거듭했으나, 유독 야망파만큼은 조직원을 각 기수별로 관리하는 등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조직관리로 80년대 중반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서울에 ‘3대 패밀리’가 발호하는 등 전국적으로 조폭이 전성시대를 이루던 80년대 중반, 청주지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야망파의 독주에 반발, 김아무개씨를 중심으로 한 파라다이스파와, 또 다른 김아무개씨를 중심으로 한 시라소니파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이 양대 조직은 지금까지 청주지역 조폭의 대명사로 통했다. 현지에서는 이들 조직을 줄여서 ‘파라파’와 ‘시라파’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 신진 세력의 발호는 야망파의 내분으로 이어졌고, 조직원이었던 최아무개씨가 자신의 추종세력을 이끌고 시라파에 흡수되고, 또다른 조직원 신아무개씨는 추종자들과 파라파에 흡수되면서 두 계파는 부쩍 세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서로 견제와 대립을 통해 세력 불리기에 열중하던 파라파와 시라파는 각각 신씨와 최씨가 사실상 보스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갔다. 청주시내 접경을 중심으로 파라파는 남문로 일대의 유흥업소를 장악하였고, 시라파는 북문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했다. 지역 다툼을 계속하던 두 파의 충돌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두 세력간의 다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90년 5월에는 청주시 북문로 1가에서 파라파와 시라파의 행동대원들간에 유혈이 낭자한 거리 패싸움이 벌어져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지는 등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90년 7월에는 시라파 행동대원들이 파라파 습격을 계획하고 합숙까지 하다 사전에 경찰에 검거된 적도 있었다.
90년 당시 범죄와의 전쟁으로 청주시내의 대표적 조폭인 이들 두 그룹의 조직원 약 70여 명이 구속되는 등 한때 철퇴를 맞기도 했으나, 1~3년의 짧은 형기를 마친 조직원들이 복귀하면서 93년경부터 다시 조직이 재정비되기 시작했다.
조직의 재정비로 양측은 나이트클럽 룸살롱 등 유흥가 이권을 둘러싸고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89년부터 촉발된 양 계파간의 세력다툼을 가리켜 청주에서는 ‘4년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라파 보스 신씨의 살해 사건이 터진 것은 93년 5월. 당시 신씨는 시라파 조직원들의 기습을 받고 칼에 찔려 사망했다. 두목의 사망으로 파라파는 와해될 위기에 처했으나, 신씨의 선배격인 또다른 신씨가 조직을 추슬러 파라파를 이끌게 된다. 신씨는 지금도 청주 주먹계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로서 현재 폭력 등의 혐의로 복역중이다.
이씨와 조폭의 연계설이 불거진 것은 80년대 중반 무렵이다. 한창 파라파와 시라파가 발호하던 조폭의 전성기였다. 그는 80년대 부동산업 건설업 사채업 등에 손을 대면서 돈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시내 R호텔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사업가로 변신한다.
이씨가 지금 검찰로부터 내사를 받고 있는 살인교사 혐의는 89년 5월 청주시 북문로에서 화성파 행동대장 배아무개씨를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청주 J호텔 오락실 영업권 다툼이 원인이었다. 화성파란 야망파의 잔존 세력이 조직한 제3의 폭력조직이었다.
당시 파라파의 조직원 김아무개씨와 조아무개씨는 살인 혐의로 10년을 복역한 뒤 99년 출소 후 이씨를 찾아와 “당신이 시켜서 한 일 아니냐. 당신 때문에 10년을 감방에서 썩었는데 뭔가 보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술집을 차리기 위한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00년에도 이씨를 찾아와 “정말 모른 척하면 검찰에 다 불어버리겠다”고 협박해 돈 3천만원을 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출소 후 신흥 조폭세력인 ‘신대명사파’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 현지 경찰들이 이씨가 파라파와 다소 가까웠던 것으로 보는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이들이 귀찮게 하는데다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 두려워 돈을 준 것이지 살인교사는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한편 충북지방경찰청의 조폭담당 한 관계자는 “파라파와 시라파가 워낙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 보니 이름은 남아있지만, 두목급들의 대거 구속으로 현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씨 역시 80년대는 모르겠으나, 이후 이 지역에서 워낙 사업가로 컸기 때문에 조폭과의 연계설은 딱히 드러난 것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