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씨는 1심 재판 당시 비공개로 열린 심문에 증인으로 참석해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이후 2013년 4월 자신이 한 진술을 전면 번복하면서 가려 씨의 진술은 증거능력을 상실했다(가려 씨의 오빠 유우성 씨는 가려 씨가 진술을 번복하기 전인 2013년 2월에 옥중에서 가려 씨에게 자신은 결백하며 동생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서신을 보낸 바 있다).
유우성 씨의 행적도 미심쩍다. 유 씨는 화교라는 신분을 이용해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의 대북 송금을 돕는 일명 ‘프로돈’ 사업을 하며 브로커로 활동했다. 이 사실이 2010년 검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조사를 받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일부 화교들은 북한을 비교적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브로커로 활동한다. 이 과정에서 30~60%의 수수료를 챙긴다고 한국의 대북 인권단체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적지 않은 돈을 번다는 얘기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싶은 탈북자들은 브로커로 일하는 화교나 조선족 상인을 찾는다. 브로커들이 지정한 은행계좌에 돈을 넣으면 브로커들은 직접 북한에 들어가 전달하기도 하고, 북한 내의 ‘거래선’을 통해 전달하기도 하는 방식이다. 이런 활동이 기승을 부리면서 2008년 북한 보위부는 브로커로 활동하는 북한 내 화교들을 검거해 노동단련형을 내리기도 했다.
유 씨 남매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화교라는 신분을 숨겼다. 유 씨의 부모님은 모두 화교로 4대 전에 북한에 정착했다. 2004년 북한을 떠나 중국 여권으로 남한에 들어왔다. 당시 유 씨는 자신을 탈북자 ‘유광일’이라고 주장했다. 본명인 ‘유가강’은 화교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후 유 씨는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이름을 바꿔 썼다. 2007년에는 유가강으로 중국 호구를 위조 취득했다. 유 씨는 이 호구를 이용해 중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오갔다. 유광일이 가명이라는 사실은 2009년 밝혀졌다. 탈북자 신분으로 북한을 자유롭게 오간 유 씨의 행적이 의심을 사 불법 대북 송금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검찰은 유 씨가 진성탈북자가 아닌 중국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유 씨는 혐의를 벗기 위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을 제시했다. 검찰은 이를 사실로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으나 후에 맹원증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유 씨가 영국에 머물던 2008년에는 조광일이라는 이름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한국 입국 시 사용한 이름을 성만 바꿔 사용한 것이다. 유우성이라는 이름은 2010년에 개명신청을 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유 씨는 이런 여러 가지 ‘간첩’으로 몰릴 만한 정황증거들에 대해 재판부에 낸 진술서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이 ‘상식의 선’에서 어느 정도 용인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재판부의 판결이 아닌 여론의 심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서윤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