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관계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국무총리실과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참여하고 있는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은 이 회의에서 101건의 규제개선을 통해 총 10조 원 규모의 투자와 6만 명의 고용창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회를 거쳐야 하는 입법사항이 모두 11건이다.
우선 천막 현수막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LED 전자게시대(현수막)’에 대해 정부는 원칙적 허용 방침을 밝혔지만, 이를 설치하려면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건물 부지 밖에서는 원천적으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되고 있는데, 이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려는 광고업자들이 난립하면서 LED 현수막이 범람해 또 다른 도시 공해가 될 수 있고, 유일하게 자율지정 구역에서 독점사업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안전행정부는 오는 6월까지 조치를 완료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가 이를 처리해줄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테마파크 등 유원지 내 푸드트럭(Food Truck, 이동매점)을 이용한 식품판매를 허용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유원시설에서 식품접객업(음식류, 아이스크림류 등을 조리·판매하는 영업)을 하려면 독립된 건물(가설건축물 포함) 내에서만 영업 수행이 가능하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식품위생법’의 시행규칙을 개정, 자동차등록증을 제출하면 건축물로 보고 영업을 허용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테마파크 내 푸드트럭이 생길 경우 유원시설 운영사업자들이 ‘돈 되는 사업’을 그냥 외부에 내줄 리 만무하다는 게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한 프랜차이즈업체 관계자는 “운영사업자들이 경쟁입찰을 통해 푸드트럭 사업권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뒷돈이 오가며 수의계약이 이뤄지고 친인척을 동원한 위장임대 등의 부작용이 빈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푸드트럭 자체도 자동차 개조(튜닝)에 대한 규제가 먼저 풀려야 가능하다. 이 역시 국회 논의를 거친 ‘자동차관리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전체 튜닝산업 규제개선과 맞물려 있어 정부가 약속한 9월까지 해결하는 것은 기대난망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천송이의 코트를 중국에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하며 주범으로 지목한 컴퓨터 부가 프로그램인 ‘액티브(Active)X’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당장 개선이 힘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액티브X가 각종 악성코드의 유입경로가 된다는 지적에 따라 대체프로그램을 정부, 민간 모두에 개발하라고 독려했지만 아직까지 성과물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규제개혁 점검회의 생중계 방송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민관규제개선추진위가 7조 원의 투자와 8000명의 고용 창출이 예상된다고 밝힌 삼성전자의 경기 화성시 동탄산업단지 공장증설은 실행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직 추진계획과 관련해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당초 이 공장은 산업단지와 인근 택지개발지구에 걸쳐진 땅에 지을 계획이었지만 정해진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건축만 허용한다는 규제에 막혔다. 이에 국토부가 관련법규에 대한 유권해석을 변경해 도시계획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두 구역 간 연계건축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LED 업체인 서울반도체의 이정훈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1·2공장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에 이동통로를 만들 경우 고용창출과 수출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련 규제 완화를 건의했다. 2018년까지 1조 5000억 원의 투자확대와 5000명의 신규 고용도 약속했다. 하지만 서울반도체와 계열사의 지난해 매출 합계액이 1조 2000억 원대이고, 직원 수도 19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공장간 이동통로를 만들어줬다고 해서 4년 내 직원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성장이 가능한지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 내에서도 규제개혁에 대한 온도차도 있다. 대표적인 규제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노대래 위원장은 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공정경쟁연합회 조찬강연에서 “공정위 소관 규제 482건은 일반적인 규제와는 성격이 다르므로 특성을 고려해 유형별로 분리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범과 규제를 구분하면서, “규범은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규정으로서 경제상황 등 여건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반 법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당공동행위 금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금지, 다단계판매업자 규정 등 각종 금지행위 규정을 비롯해 현장조사 및 과징금 제재조항 등 규범의 이행담보를 위해 필요한 규정, 소비자의 권리를 명시한 규정 등을 그 예로 거론했다. 노 위원장이 규범의 사례로 열거한 항목들은 그간 기업들이 규제로 개선을 요구해왔던 것들이다. 정부 내 부처 간 온도차, 정부와 민간 기업 간 시각차가 여전한 셈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