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대표 계열사들이 잇달아 경영효율성을 꾀하기 위해 각자대표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LG화학을 제외한 LG전자, LG상사, (주)LG는 사업 영역이 딱히 구분되지 않아, 각자대표를 도입하는 것은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나누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여의도의 LG 쌍둥이 빌딩. 연합뉴스
3월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나타난 재계 트렌드 중 하나는 각자대표체제 도입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금융권과 중견기업에도 각자대표체제 바람이 불었다. 기업들이 각자대표체제를 도입하는 까닭은 사업 규모가 커지고 영역이 넓어지면서 대표이사가 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각자대표체제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LG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LG그룹은 LG화학에 이어 최근 LG전자, LG상사, (주)LG 등 그룹의 대표 계열사들이 속속 각자대표체제를 도입했다. 3년여 전부터 각자대표체제를 도입한 LG화학은 박진수 대표(부회장)가 석유화학본부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있고 박영기 대표(사장)가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를, 권영수 대표(사장)가 전지사업본부를 맡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하나의 법인이지만 각 사업부의 영역과 문화가 달라 법인 전체가 움직이는 것보다 각 사업부마다 책임감 있게 움직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며 “법인 전체와 관련된 문제는 CEO인 박 부회장이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최근 구본준 대표(부회장) 외에 정도현 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사업 비중이 커지다보니 신속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기존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에 있던 것들을 승격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LG상사 역시 지난 14일 정기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이희범 부회장과 송치호 부사장(COO·최고운영책임자)을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이밖에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도 지난 21일 주총에서 구본무 회장과 조준호 사장을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이 같은 장단점으로 볼 때 LG그룹이 최근 도입한 체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각자대표체제라고 일컫기 쑥스럽다. 그나마 LG화학만이 제대로 된 각자대표체제라고 할 수 있다. LG전자, LG상사, (주)LG 등은 사업영역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닌 데다 기본적으로 두 명의 각자대표의 직위가 달라 두 대표를 동일선상에 놓기 힘들다. LG전자와 (주)LG는 아예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각 대표가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LG그룹 내에서는 최근의 각자대표체제에 대해 “직위가 달라 투톱체제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실제로 정도현 LG전자 사장, 송치호 LG상사 부사장 등 새로이 각자대표에 선임된 사람들의 권한은 한정돼 보인다. 각각 CFO, COO인 터라 국내에서 재무 관련 문제에 권한이 국한될 수 있다. 그나마 ‘큰 건’도 아니고 구본준 부회장과 이희범 부회장이 장기간 해외출장 등으로 부재 시 경영상 대표이사의 결재가 필요한 간단한 경우에만 결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각자대표체제는 사업구조상 필요에 따라 도입하는 일시적인 제도”라며 “사업 영역이 딱히 구분되지도 않는데 각자대표를 도입하는 것은 자칫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나누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부회장-사장, 부회장-부사장 등 직위가 다르고 오너-전문경영인의 관계니만큼 각자대표 내에 상하관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