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KDB산업은행으로부터 동부 두 회사의 패키지 인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사진제공=포스코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패키지로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두 곳 모두 개별매각을 하더라도 충분히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인기 매물에 속하는데 왜 굳이 패키지로 매각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게다가 피인수 기업이 이제 막 새로운 회장 체제로 출범한 포스코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포스코 측은 산업은행의 비공식적 제안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공식적인 제안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답할 단계는 아니다”며 “공식적인 제안이 오면 그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조만간 포스코에 패키지 매각에 대한 인수의향서를 보낼 예정으로 알려졌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국내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 비록 규모가 작고 시설이 노후화됐지만 국내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0년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선정된 동부발전당진도 국내에서도 여러 업체가 인수를 노리고 있을 만큼 꽤 인기 있는 매물이다. 부지 확보와 지역 합의가 이뤄진 상태여서 올해 안에도 발전소 공사를 착공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인수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크게 득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워낙 오래된 공장이라 인수 후에도 설비보수에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회사들이 이곳에 관심이 없는 이유다.
반대로 국내 진출을 노리는 중국 업체들에겐 매력적인 곳이다. 이대로라면 중국 업체에 내줄 수밖에 없다. 철강산업의 한 부분을 중국 업체에 내준다면 가뜩이나 중국 업체의 공세에 시달려 글로벌 철강시장에서 힘이 빠진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의 진출을 우려한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맡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오준 회장 체제의 포스코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인수하기가 껄끄러운 상태다. 권 회장은 취임 전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린 정준양 전 회장의 경영 방식에 반대 의사를 내비쳐왔다. 권 회장의 경영방식은 ‘본연의 철강사업·재무건전성 강화’로 요약된다. 비핵심자산 매각과 불필요한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당분간 M&A를 자제하며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
게다가 권 회장은 취임 이후 지난 19일 사내 임원회의에서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의 성과와 수익성을 구현할 때까지 기본급 30%를 반납하겠다”며 솔선수범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작고 노후한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인수하기는 무리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금 여건상 둘 다 욕심낼 물건도 아니고 크게 관심도 없다”면서도 “그렇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철강업계 맏형 격으로서 완전히 도외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전경.
포스코가 ‘철강업계 맏형 격’이라며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은 산업은행과 마찬가지로 중국 업체에 대한 견제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비록 시너지효과를 크게 내기는 힘들겠지만 중국 업체의 국내 진출을 견제할 수는 있다”며 “서쪽 지역에 생산기지가 없는 포스코로서는 인천공장 인수가 한편으로는 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당진의 한보철강을 인수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라는 말이 회자된다. 결과적으로 한보철강을 인수한 현대제철은 국내에서 포스코를 견제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정말 욕심내는 매물은 동부발전당진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에서 이미 한 달 전에 포스코에 인수를 제안했고 포스코 내부적으로 인수하기로 정했다고 알려진 이유도 동부발전당진이 있어서다.
포스코는 지난해 초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탈락한 후 정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에너지사업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철강사업과 내실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던 권오준 회장도 “청정에너지 사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에너지사업만큼은 열의를 보였다. 동부발전당진은 부지 확보 문제나 지역 합의 문제 등 골치 아픈 일을 거의 마무리한 상태다. 인수만 하면 올해 발전소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재계 고위 인사는 “산업은행이 둘을 패키지로 매각하려는 것도 동부제철 인천공장이 크게 인기가 없지만 동부발전당진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산업은행으로서는 두 곳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포스코가 제격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은 왜 개별 매각으로도 흥행할 수 있는 두 곳을, 자칫 수의계약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포스코에 패키지 인수를 제안했던 것일까. 앞서의 재계 고위 인사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계속 대기업 구조조정을 닦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하다”며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처리하고 국내 철강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